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3)

제3화, 숫자 3의 조화와 균형의 상징이다

by 오엔디

우리는 때때로 숫자에 기대어 삶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어떤 숫자는, 설명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3’이라는 숫자가 그렇다. 너무 익숙하여 가끔 그 상징적 의미조차 잊고 살아간다.

그것은 단순한 수치의 영역을 넘어선다.


어떤 삶은 균형이 되어 신성한 자연의 질서를 새롭게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나를 새롭게 만드는 신호체계다.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기독교의 삼위일체,

불교의 삼보(佛·法·僧), 108 번뇌의 상징성,

도교의 천·지·인 사상 등이 그렇다.


동서고금 모든 문명에서 숫자 3은 완전한 구조체로 등장했다.

자연의 빛은 3 원색(빨강, 초록, 파랑),

물리적 시간의 세 축 – 과거·현재·미래,

대자연의 세 요소 – 동물·식물·광물.

이 모든 것이 셋으로 각 자의 균형을 이룰 때,

세계는 조화를 얻는다.


숫자 3은 ‘최소의 다자(多者)’ 관계이자,

‘나와 너’를 넘어선 제삼자의 객관적 시선이다.

숫자와 사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기준, 매의 눈(조감도) 위에서 내려다본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결국엔 하나도 없게 되는 빈 공간, "0"의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궁극의 한 점으로 다시 합쳐진다.


신영복 선생의 일화에 따르면 "내 행운의 숫자는 3이다." 말할 때 세 번씩 생각하고, 글도 딱 세 번만 고치고, 사람은 적어도 세 번은 만나보아야 그 진심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숫자 3처럼 굴곡은 있으나 단단하고 조화로운 리듬감으로 하나, 둘 서로 이어졌다.

‘신영복’ 이름 석 자를 품고, 하나인 ‘처음처럼’을 하루 세 번씩 삶을 복기한다. 하얀과 검정의 바둑돌 2개는 네모난 평판 위에서 사각을 밀고 당기고, 주고 빼앗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


하나, 둘, 셋, 넷 각 숫자의 삶을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나 역시 늘 숫자와 삶의 관계를 성찰해 본다.

첫 번째는 오직 앞으로 또는 뒤로, 직선 하나,

두 번째는 좌우 또는 위와 아래, 실패와 성공, 각각의 상호 관계 둘,

세 번째는 이 둘을 조응하는 제 삼의 시각, 성찰의 되돌아봄, 제삼의 우주 공간이 된다.


글을 쓸 때도,

처음은 열정, 두 번째는 혼란,

세 번째는 진심으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글도, 삶도, 관계도 세 번째에야 진심, 즉 무한의 빈 공간 "0"이 된다.


대도무문, '큰 깨달음이나 진리에 이르는 데는 정해진 길이나 방식'이 없다. 어느 하나의 문이 아닌 사방의 문, 정하지 않는 정할 수 없는 광활한 문, 보이지 않으나 볼 수밖에 없는 진리의 문이 늘 가까이 존재한다.


여기에 ‘숫자 3’은 동양의 철학적 사유에서도 분명한 의미를 차지한다.

음양오행에서 ‘목(木)’은 바로 숫자 3의 자리다.

목은 봄이고, 시작이며, 방향은 좌, 동쪽의 파랑을 상징한다. 그 반대의 편에 숫자 4는 금(쇠), 가을(끝, 오른쪽, 서쪽)이 있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

가지와 잎이 뻗어 나가며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다.

숫자 1은 ‘씨앗’, 숫자 2는 ‘발아’,

그리고 숫자 3은 ‘줄기와 가지가 뻗어 나가는 생명의 확장’이다.


성공한 CEO이며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아무리 위기의 순간이 오더라도 “세 번의 깊은 숙고 없이는 무엇이든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3 단식 사고방식은 ‘하나, 문제 인식 → 둘, 본질(본연)의 통찰 → 셋, 가치 판단’이라는 ‘목의 속성인 리듬’에 그대로 닮아 있었다.

한 방향으로 치닫는 게 아니라, 가지를 뻗듯

관점과 해석을 확장시키며 문제의 중심을 꿰뚫어 보는 직관의 통찰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인 '얼'에도 숫자 3의 상징은 깊이 새겨져 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환웅·단군,

중국의 삼국지 내 도원결의,

고구려 삼족오 깃발, 삼성(三星)의 이름까지.

숫자 3은 행운이자 바람이며,

모든 것을 이루는 완전함의 구조체였다.


잠시 세이노의 삶의 철학을 떠올린다.

그는 말했다. “작은 실천을 꾸준히 반복하면, 그게 결국 인생을 바꾼다.”

그가 말한 부는 단지 돈이 아니었다.

습관과 사고방식, 관계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는 삶의 시스템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을 매일 실천하고 3년간 축적한 결과였다. 숫자 3은, 그렇게 ‘실천의 리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부는 단지 돈이 아니라,

습관, 관계, 사고방식의 세 기둥으로 이루어진

실천의 3각 구조체였다.


그 모든 것을 고쳐 쓰는 데, 숫자 3이라는 리듬이 작동하고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숫자 3은,

세 번의 실패 끝에 얻는 내면의 통찰이고,

세 번의 결심 끝에 도달하는 궁극의 평온이다.


‘나’와 ‘너’,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또 다른 나를 확정하는 숫자.

그것이 바로 숫자 3이 가지는 더 큰 의미이다.


이제 나는 믿는다.

삶은 1과 2만으로는 온전하지 않다.

결국, 셋이 되어야 균형을 이루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숫자 3처럼, 세 번 고쳐 쓴 나의 이야기가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나의 삶이 되어간다.


이제 다시, 나를 하루에 세 번씩 고쳐 쓴다.

세 번째 마음으로.

세 번째 시선으로.

그리고, 세 번째 ‘또 다른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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