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쓸 만한 배우 박정민이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를 연기한 뒤, 배우 박정민이 했던 말이다.
그의 말엔 조용하지만 강단의 작은 울림이 있다. 그는 촬영 내내 울었다고 했다. 실존했던 한 청춘의 뜨거운 생을 좇다 보니, 어느덧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자꾸만 내 스스로가 부족해 보였다고. 그 울음은 단지 한 청년을 존경한 부끄러운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묵직한 내면의 자기 성찰이었다.
박정민은 하루도 허투루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감정을 붙잡아 단어로 옮기고, 문장으로 정리해, 결국 책으로 남겼다.
그의 책 『쓸 만한 인간』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 울컥 이 자주 올라온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 숙여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매일 쓴다는 것
박정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 반성하고 성찰의 글을 쓴다.”
언제나 감정의 잔해를 외면하지 않고, 그 앞에 순수하게 앉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솔직하고, 사려 깊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다짐이 글의 바탕에 깔려 있다.
글은 쓰는 이의 감정과 품격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 그건, 스스로에게도 정직하겠다는 약속이고 다짐이다. 그렇게 쓰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극한의 노력도 실천하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그는 쇼팽의 ‘녹턴’을 직접 연주하기로 했다.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고, 결국 손가락은 굳어갔다. 피가 배고, 손톱이 갈라졌지만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매번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런 내가 싫어서 계속 앉아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재능은 출발점일 뿐이다. 끝까지 그 재능을 유지하는 건 결국, 피나는 반복 훈련과 연습의 결과이다.
글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아이디어는 늘 스치고 넘쳐난다. 하지만 원고는 그대로 남는다. 그건 손으로, 인내로, 수없이 고쳐 쓰는 반복된 행위, 학습의 결과이다.
‘될 놈은 된다’는 말보다, ‘될 때까지, 끝까지 쓰는 놈이 된다’는 진실을 그는 몸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증명해 냈다.
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다
'사바하'의 정나한 역할은 감정이 적고 해석이 어려웠다. 그는 자의적 해석으로 인물을 망치지 않기 위해 감독에게 계속 질문했다. 왜? 이 장면이 필요한지, 왜? 굳이 이런 표정이어야 하는지를, 마침내 스스로 그 인물을 완성했다.
그는 일상에서도 늘 묻고 대답한다.
“왜 나는 늘 못났다 생각할까.”
“왜 좋은 배우,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글도 그렇게 질문으로 시작된다.
“나는 왜 쓰는가?”
“이 말은, 내안 어느 깊은 곳에서 나온 건가?”
좋은 글은 답보다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품는다.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좋은 글도 다시 살아남는다.
가장 사적인 고백으로 보편의 울림이 되는 순간
가장 친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끝내 그 친구를 놓아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을 받으면, 하늘에 있는 그 누나에게 꼭 말하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글을 썼다.
“나는 웃고 있었고, 그 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참 많이 사랑했구나.”
글도 그렇다. 가장 깊고 나중에 하는 고백은, 결국 누군가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작가님, 그 말… 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 순간, 글은 혼자의 것이 아닌 ‘우리의 언어’가 된다.
코드가 맞는 문장, 그리고 딱 맞는 독자가 있다
영화 '밀수'의 장도리 역할을 맡았을 때,
류승완 감독은 박정민을 “영리한 배우”라 칭했고, 선배인 김혜수는 “그의 최고 연기”라 말했다. 연기도 상호 코드가 맞아야 빛이 난다.
글도 마찬가지다. 문체, 어조, 주제, 결.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나다운 문장’이 완성된다. 그 문장이 언젠가, 어떤 독자의 마음과 ‘딱’ 맞닿는 순간이 온다.
그가 『쓸 만한 인간』 서문에 썼듯,
“이 글이 누군가의 우울한 하루에 스치듯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그 말이 참 좋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고쳐 쓰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슬픔을 견디고, 부족함을 마주하며,
자판 위에 하루를 다시 세운다.
배우 박정민은 그렇게 연기하고,
나는 그렇게 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한강 작가의 고백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을 손으로 느꼈어요. 그 순간, 언어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하지만 동시에, 언어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그녀는 그 슬픔을, 말이 되지 않는 상실을,
오래 꿰매고 또 꿰매어 『소년이 온다』로 남겼다. 그 문장은 단단하고, 깊고, 조용하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일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붙드는 일이라는 것을.
무너졌던 나를, 버거웠던 마음을,
말이 되지 않았던 그 시간을
문장 하나로 다시 끌어안는 일.
그렇게 오늘도 나는 고쳐 쓴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이제 다시,
나는 나를 고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