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말없이 다가온 사람, 수연으로 남고 싶다
살면서 가끔, 아주 가끔…
누구나 마음속의 ‘그 사람’을 한번쯤 떠올릴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언제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느 추운 날, 어느 무더운 날 밤에 문득,
따뜻한 물수건 한 장처럼 내 마음속에 포근히 스며든다.
법정 스님의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오래전 내 안에 고요히 남는 한 사람을 떠 올려 본다. 누군가는 피천득의 아사코를 말할 테고, 또 누군가는 수연 스님을 떠올린 것이다.
그 이름조차 부르기 어려운 존재였고,
멀리서 말없이 등을 살짝 밀어주는 따뜻한 봄바람과 같은 분이다.
그 해 시월 보름, 동안거에 접어드는 날에 몇 가지 일에 합의를 했다. 그는 모든 일을 내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정진하는 데는 주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단둘이 지내는 생활도 둘의 뜻이 하나로 묶여야만 원만히 지낼 수 있다.
그는 전혀 자기 뜻을 세우지 않았다.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이다. 속세의 육신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적지만, 출가는 한 해 더 빨랐다. 교육은 많이 받지 않았으나, 천성이 차분한 인품이다. 고향이며 어째서 출가했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지나온 자취 같은 것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의 언행이나 억양으로 교양, 출신지를 짐작할 따름이다.
그는 나처럼 호남 사투리를 쓴다. 그리고 소화 기능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나는 공양주(밥 짓는 소임)를 하고 그는 국과 찬을 만드는 채공을 보기로 했다. 국을 끓이고 찬을 만드는 그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시원치 않은 감일지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감로미가 되었다.
나는 법당과 정랑의 청소를 하고 그는 큰 방과 부엌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끼만 먹고 참선만을 했었다. 그때 우리는 초발심한 풋내기 사문들, 계율은 문외 했고 바깥일에 한 눈 팔지 않아 오롯이 정진만을 했다.
그 시절 청아하고 단정했던 수연 스님.
법정 스님의 무소유 구도를 말없이 수행으로 도와 항상 무언가를 깨우쳐 준 사람.
그렇게 조용히, 헌신과 자비로 곁을 지킨 사람.
차디찬 겨울, 80리 탁발 길도 마다하지 않고
약 한 사발을 들고 돌아온 순수한 그림자.
내 마음속에 ‘자비’라는 사랑을 실천한 사람.
법정 스님은 기억한다.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쥐었다.” 한 마디, 한 장면이 내 마음을 요동 친다. 그 어떤 설교보다, 어떤 교리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신앙이 무슨 큰 일인가? 결국, 누군가 아플 때 물 한 잔을 건네고, 이마 위 찬 물수건 하나를 올려놓는 자비가 아닐까 싶다.
말없이 토방 위 고무신을 하얗게 닦고, 젖은 옷가지를 풀 먹여 깔끔히 다려주는 마음,
수행 중인 노스님이 메고 온 걸망을 먼저 토굴에 가져다주는 마음,
무슨 일이고 그가 할 만한 일이면 말없이 조용하게 해치우는 밀행의 마음.
치료를 위해 덜컹거리며 흘러가는 버스 안, 주머니칼로 창틀 나사못 두 개를 조이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큰 자비다.
내 것이네, 네 것이네 구분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 것인 양 다룰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정작 내것은 하나도 없는 순수한 사람,
결국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할 만한 사람,
내 것이 전혀 없는 게 아닌 무소유, 큰 도는 따로 들어오는 문이 없다. 온 사방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고, 모든 진리는 그대로 열려있다.
잠시 떠오른 또 다른 두 사람.
조선의 황진이와 서경덕 선생, 기생이자 시인이었던 황진이는 스승이자 도인이었던 서경덕에게 잠시 속세의 연정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연정을 품되, 말로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황진이의 방에 조용히 숯불을 피워 놓고, 젖은 옷 가지를 말려 두고 돌아가곤 했다.
그녀는 시로 남기고, 그는 침묵으로 답했다.
지켜보고, 보듬고, 담담히 물러서면서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그 애달프고 간절한 사랑.
그 또한 수연 스님의 자애로운 보살핌이었다.
중국의 천하를 놓고 패권을 다툰 한의 유방과 초나라의 영웅호걸 항우.
그 비운의 전쟁 영웅은 마지막 순간에도 곁에서 묵묵히 따랐던 연인 초희를 위해,
“강동의 미인은 더 이상 나를 따르지 마라”라고 말하며 스스로 운명의 칼 끝을 선택한 영웅.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운명조차, 마지막으로 지킨 것은 말없이 따르던 한 여인이었다.
조선후기 큰 거인, 정조대왕과 의빈 성씨의 애절하고 끝내 못 이룬 사랑도 떠오른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에게 성빈은 따뜻한 벗이자 조용한 연인이었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내기에 너무 가혹하고 냉정한 구중궁궐. 늘 차디찬 북풍 한파였다.
그녀가 병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 후,
정조는 생전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나, 군왕의 얼굴로 말없이 무덤을 지켰다.
백성의 임금이기 전에,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침묵의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담겨 놓았다.
국가 위난시대 난세의 영웅, 이순신 장군.
한 설화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두룩댁이라 불리던 여인과 깊은 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국난 위기의 임지왜란이 터지자 장군은 급히 전장으로 출정을 했고,
그녀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장군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전장에서 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날,
두룩댁도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는 ‘말 없는 사랑’의 희생과 대자비의 귀감이 되었다.
나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말없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내가 무심코 지나친 하루하루 속,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 미소 한 번 건네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언제나 말로만 사랑을 하고, 정작 ‘행동하는 사랑’은 그만큼 부족하고 인색하게 굴었는지.
법정 스님은 그를 ‘진정한 도반’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이었다고 말한다.
말보다는 손길로, 지식보다는 정성으로 곁을 지켰던 그의 가르침은 어느 구도의 앎보다 값진 실행, 어느 불경의 한 권보다 더 깊고 단단한 밀행의 실천이었다.
이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 가고 있다.
‘나를 고쳐 쓴다’는 것은 전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묻고, 누군가에게는 더 자주 다가가는 순수 밀행의 여정인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괜찮아?”라고 묻는 일.
기억 속 그 사람처럼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일.
그렇게 ‘수연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없이 닦여진 하얀 고무신처럼,
누군가의 무거움을 조용히 정리해 준다면,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너무 많은 말을 배우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건 그냥 말 없는 사랑,
말 없는 신앙, 말 없는 자비가 아닐까 싶다.
세상을 떠나기 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고 싶다.
“그 사람은 말없이 따뜻한 사람이었어.”
그 한 문장으로 내 삶이 기억된다면,
그보다 더 멋진 고쳐쓰기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