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8)

제8화, 다시 찾은 귀걸이 한쌍이다

by 오엔디

도시의 무더운 아침은 정해진 시간, 뻐꾹 시계의 긴 울림으로 재깍재깍 시작한다.

늘 오르는 99개의 계단을 생각하면, 오늘은 100개를 넘길 수 있을까? 일상의 반복되는 단조로운 흐름 속, 문득 한 걸음이 휘청거린다.


그날도 그랬다.

50대 초반의 한 여성이 한적한 시골 목욕탕에 서둘러 들어갔다. 수증기 자욱한 중앙의 공동탕실, 찰랑찰랑 머리 감는 소리, 타일 위를 미끄러지는 슬리퍼 소리. 그녀는 그런 평범한 장면, 익숙한 하루를 시원하게 정리하 듯 나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귓불이 허전했다. 아~~, 한숨과 함께 작년 25주년 은혼식,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사준 하얗고 반짝이던 귀걸이 한쌍이 사라졌다. 바로 목욕탕을 향한다. 예상한 그곳,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녀는 서둘러 다시 탈의실로 들어갔다. 배수구 주변까지 몸을 숙이며 찾아봤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녀는 시간에 쫓겨 스스로 다독이며 위로한다.


“그래 누군가 정말 필요했던 사람이 가져갔을 수도 있지? 나보다 더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나는… 크게 베풀고 기부한, 그래서 잠시 잃어버린 걸로 하자.”


그 순간, 『채근담』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세상의 일은 얻고 잃는 것이 하나의 순리고 이치다. 이 또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잃어버림이 아니라, 욕심을 놓아버림, 잠시 내려놓는 것으로 세상의 순리에 적응해 본다.


인간의 본능처럼 함께한 서운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들른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매점 앞을 지나며 김밥을 팔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저번에 하얀 귀걸이 못 보셨어요?”

아주머니는 어딘가로 들어가더니, 손수건을 조심스레 펼쳐 보였다.

고이 감싸인, 바로 귀걸이 한쌍이 반짝거렸다. 놀람과 기쁨이 뒤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거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그때 바로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여기 분실물 많아요. 웬만하면 제가 다 잘 챙겨 둬요. 암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돌아오는 길, 그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다시 고쳐 써 쓸 수 있다면…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귀걸이 같은 건 아닐까?” 마음속 어딘가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야기. 용기가 없어 꺼내지 못 한 때묻힌 감정들.


그렇게 한 문장이라도 용기 내 꺼내보자.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딱 한 번의 용기를 내면, 놀랍게도 그것들은 다시금 선명하게 내 것이 되어 돌아온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무위로 행하되, 무불위 하라.” 억지로 쥐려고 하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 듯 내버려 두라.

그러나 마음을 담는 일만은 단 한 번이라도 허투루 하지 말 것이다.

글도 그렇다. 짜내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글멍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마치… 손수건 속에서 조심스레 꺼내는 것처럼.


정조대왕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궁녀가 떨어뜨린 서찰을 조용히 줍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글을 잃어버릴 수는 있어도, 그 뜻은 흘려서는 안 되느니라.”


그녀는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건, 잊고 살던 내 마음의 귀걸이 한쌍을 다시 찾아오는 일이라는 걸.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가 아니라, 내 삶의 참된 의미였다.


우리는 종종 묻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포기한다. 썼던 글, 꺼내려다 그만둔 문장, 한때 반짝였지만 그냥 흘려보낸 마음들.

글쓰기는 말한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일주일쯤 후라도,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면, 그 문장들은, 글감들은, 정성스럽게 손수건 속에 싸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체국에서 ‘주소 불명’으로 돌아온 편지를 보며 우리는 종종 말한다.

“내가 주소는 제대로 적었었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은 마음에서 쓴 편지치고

진심이라면 대부분 누군가에게 도착한다.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귀걸이 한쌍은 돌아왔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녀의 마음속 ‘쓰고 싶었던 말 한쌍’도 그날 조용히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귀걸이를 처음 달고 폴짝 뛰었던 날보다, 그 글을 쓴 날이 훨씬 더 빛났다.


그날 이후 매주 한 편씩, 다시 일기장을 꺼냈다. 잃어버린 문장 한 줄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자,

잊고 살았던 ‘나라는 이야기’도 따라 돌아왔다.


한 청년 작가는,

십 년 전 출간을 꿈꾸며 써둔 소설 원고를 서랍에서 꺼냈다. 버리려던 파일을 읽다 문득,

“이건 내가 써야 할 이야기였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3년 뒤, 그 책은 출판되었다.

그는 말한다. “그건 단지 글쓰기가 아니라, 나를 다시 고쳐 쓰는 일이었다.”


또 한 사람은,

은퇴 후 아무도 읽지 않는 블로그에 매일 한 줄 일기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손녀가 그 글을 발견하고 말했다.

“할아버지 글 너무 좋아요.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그 말 한마디가 그의 ‘묻힌 시간’을 되살렸고,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 첫 책을 출간했다.


인생이 늘 그렇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한쌍의 문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그 문장을 다시 찾아 적는 일은,

세상에 편지를 띄우는 일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다시 꺼내는 용기와 도전이 계속되기도 한다.


“혹시 내가 잃어버린 평생의 문장 한쌍, 이 근처에 있지 않나요?”

조용히 묻는 이들에게 삶은 답한다. 그 문장, 여기에 잘 간직되어 있다고.


그리고 오늘,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

그 한 줄로부터 우리의 삶은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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