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16)

제16화, 채근담과 함께한 설거지 명상

by 오엔디

AI 식기세척기가 부엌 한쪽을 차지한 지 오래다.

기계는 세제 양을 계산하고, 물의 온도를 맞추고, 기름때 묻은 냄비까지 말끔히 씻어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손으로 설거지를 한다.


왜일까? 설거지 또한 글쓰기와 닮았다.

하얀 거품 속에 손을 담그는 순간, 나는 잠시 거품에 속~~ 멍하니 빠져든다.

‘거품멍’이라 부를 만한 시간. 그 사이에 오늘의 복잡한 감정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

그리고 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문장 하나, 둘이 조용히 다듬어진다.


처음 써 가는 글쓰기의 설렘과 초조함도 설거지 전의 그릇과 같다.

얼룩투성이, 어수선한 문장,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표현들. 많이 닮아간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저절로 정리되진 않는다. 조금씩 귀찮아지며 지기 싫어 짜증도 난다.

그러나 문장을 닦듯, 설거지를 하며 한 줄 한 줄 지워보고 다시 쓴다.


이른 봄날 애기상추 솎아내듯, 불필요한 말을 덜어내면 갯벌 게눈 감추듯, 갑자기 반짝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있다.

“그래, 이제 괜찮아! 나만의 글이 다가오고 있어.”


절대적 안심이 필요한 시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순수히 내라.”

금강경의 구절은 글쓰기의 본질을 일깨워 준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칭찬이나 완성에 기대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한 문장에 집중하는 것.

그게 글쓰기에서 절대, 고요의 ‘안심(安心)’이다.


설거지도 이와 같이 마음의 안정 과정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닦아내고 다시 회복하는 작은 의식과 같은 순수한 행위이다.

하얀 거품이 기름때를 씻어내듯, 속상한 말과 감정도 뽀드득 소리와 함께 흘러간다.


세심(洗心), 설거지의 철학


채근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속을 맑게 하면 형상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천지가 감응한다.”


글쓰기도 이런 과정에서 그 가치가 태어난다.

정성 들여 다듬은 문장은 내 마음을 맑게 하고,

어느 순간엔 낯선 상대의 마음까지 닦아준다.


한 독자는 내 짧은 글을 읽고 메시지를 남겼다.

“어제 회사를 그만두고 너무나도 하루가 무기력했는데, 작가 님의 글을 보고 설거지를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그토록 번잡했던 마음이 거품과 함께 씻겨 나가고 저 또한 마음이 평온해지네요.”


어느 지인은 은퇴 후, 한동한 무력감, 우울감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그래 누군가 그랬듯이, 한 문장이라도 쓰자. 그게 나의 하루를 증명해 줄 꺼야.” 그렇게 하루 한 줄씩 한 문장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일상생활, 어머니 편지까지 쓰는 글재미를 늘려 가고 있다. 가끔씩 지작시도 곧잘 쓰는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가 닦은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일상의 설거지, 내면 속 명상의 순간


아내는 가끔 내가 집안일을 잘 안 한다고 타박한다. 그래도 변명 같지만 할 말은 있다. 나는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아침마다, 퇴근 후마다, 때로는 고기 불판까지 닦으며 집중한다.


설거지 만한 명상의 시간이 따로 존재할까? 거품 속에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숟가락 하나를 헹굴 때는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마음이 차오르고, 반짝이는 싱크대를 보면 묘한 뿌듯함이 따라온다.

또한, 하얗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다보면, 어느 한강의 노을빛이나 오래된 추억 속 풍경으로 빠져 들기도 한다.


자연의 순환은 위대한 실험을 검증한다. 물은 자유로운 수증기가 되어 바다로, 구름으로, 하늘로 그리고 다시 물, 비가 되어 돌아온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나의 마음은 어느덧 저 멀리 지구 속으로, 더 멀리 우주와 잠시 연결되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설거지 미학, 그 애환의 숭고함


설거지가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할머니 세대는 겨울 우물가에서 찬물에 손을 담갔고, 어머니 세대는 좁은 부엌에서 연탄불을 피워가며 냄비를 닦았다. 그 손길은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설거지는 단순한 뒷정리가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힘이자 가족을 위한 작은 희망의 기도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하루를 마치고 싱크대 앞에 선다. 그렇게 밀린 설거지를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도 잘 버텨냈다.”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


설거지를 하며 나는 깨닫는다. 그릇의 얼룩을 지우듯, 내 안의 후회도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아내에게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남았다. 기름때처럼 눌어붙은 말이 그릇 위의 얼룩처럼 떠올랐다.

나는 손을 멈추고 조용히 방으로 가서 말했다.

“내가 많이 미안해.”

짧은 한마디였지만, 금이 갔던 마음은 다시 반짝였다.


그릇은 닦아 다시 쓰고, 글은 고쳐 다시 쓰듯,

사람의 관계도, 나의 하루도 언제든 새롭게 고쳐 쓸 수 있다.


뽀드득—소리가 경쾌하다.

그 소리는 단순한 설거지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도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쓰고 있다는 삶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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