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리더의 여유, 그 거대한 배포 따라 걷기
마음의 여유가 리더의 지도를 결정한다
리더십을 떠올리면, 대개 화려한 전략이나 눈부신 성과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 경이로운 리더십의 본질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머물고 성장하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역사를 거슬러 세종과 정조, 두 성군(聖君)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면 뜻밖의 답을 마주하게 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칼날 같은 결단력 이전에, 그들이 품었던 ‘여유’라는 숨 고르기와 ‘배포’라는 넓은 아량의 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더십의 경지는 권력의 무게가 아니라, 그 마음의 여유로움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정조, 칼날 같은 위협 속에서 피워낸 여유
정조의 삶은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암살의 위협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조정은 적대적인 시선으로 가득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조급함에 눈이 멀거나 분노에 휩쓸려 칼을 휘둘렀을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조는 달랐습니다.
반대편의 상소가 빗발치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져도, 그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책을 폈고, 붓을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내면의 파도를 잠재웠습니다.
그에게 여유란 단순히 게으른 느긋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폭발하려는 감정을 정제하고, 조급함을 억누르며, 최선의 현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독한 훈련이었습니다. 정조는 침묵으로 웅변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흔들림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여유는 자신을 끊임없이 고쳐 쓰는 수행의 반복이었고, 그 끝에서 나온 결단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세종, 자신보다 큰 인재를 품은 거룩한 배포
세종에게 리더십은 '나를 지우고 타인을 앞에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천민 출신 장영실을 발탁할 때, 신하들의 반대는 거셌습니다. 질서와 명분을 중시하던 시대에 그것은 파격이 아니라 파괴에 가까웠을 겁니다.
그러나 세종은 단호했습니다.
“재능은 결코 신분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이 한마디에는 자신의 권위를 나누어 타인의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거대한 배포가 서려 있었습니다. 세종은 자신의 앞길을 닦는 대신, 장영실이 자격루와 혼천의를 만들 수 있도록 그의 뒤편에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배포란 무조건 베푸는 호의가 아닙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기꺼이 무대를 내어주는 용기입니다.
좁은 마음에 갇힌 리더는 타인의 성장을 위협으로 느끼지만, 배포 있는 리더는 타인의 성장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완성합니다.
조선의 과학이 세계의 정점에 섰던 것은 장영실의 손재주 덕분이 아니라, 그를 품어 안은 세종의 광활한 배포 덕분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나의 좁은 방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속도와 성과라는 채찍에 맞으며 매일 쫓기듯 살아갑니다. 잠시의 여유는 무능으로 치부되고, 누군가를 품어주는 배포는 손해로 여겨집니다.
저 또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마음은 너무나 자주 좁은 방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당장의 성과에 매몰되어 서두르다 정작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진심을 놓친 적이 많았습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참아내지 못해 '틀림'으로 규정짓고, 상생할 수 있었던 귀한 인연들을 스스로 끊어내기도 했습니다.
여유는 내면의 부족함을 고쳐 쓰는 첫걸음이고, 배포는 타인을 향한 시선을 고쳐 쓰는 두 번째 걸음입니다. 리더십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무너지는 나를 다시 세우고 좁아지는 나를 다시 넓히는 이 고통스러운 '고쳐 쓰기'의 과정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관계의 미학, 정약용의 직언과 황희의 느림
정조와 세종 곁에는 그들의 여유와 배포를 증명하는 거울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정조는 자신을 비판하는 정약용의 직언을 반역이 아닌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리더에게 여유가 없다면 직언은 독설이 됩니다. 하지만 정조는 그 독설에서 나라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세종과 황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던 황희였지만, 세종은 그의 관용과 조율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면 그의 느림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세종의 판단은, 타인의 단점조차 시대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의 배포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숭고한 결단, 여유와 배포의 정점
이 글의 갈무리에서 저는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입니다.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으라"라고 말했던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것은 개인의 모성이라는 본능마저 뛰어넘은, 인류와 민족을 향한 극한의 배포였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조각을 내어줌으로써 세상을 살리려 했던 그 결단 앞에, 제가 가진 고민과 조급함은 한낱 먼지처럼 작아집니다.
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
지금 나의 글을 되돌아보고, 미숙했던 내면의 성찰과정을 다시 고쳐 잡습니다.
여유란, 흔들리는 순간마다 내 안의 미나를 다시 고쳐쓰는 일이 반복되는 성숙의 과정입니다.
배포란, 그간의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용기를 믿어주는 작은 배려입니다.
정조의 고독한 밤과 세종의 시력을 잃어가는 고통, 그리고 그들이 남긴 백성을 향한 눈물... 그 역사 속 작은 울림들이 나의 진실한 문장이 되어 되살아납니다.
"너는 네 안의 조급함과 두려움을 넘어설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미나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그 본질에 대해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짐합니다. 성과보다 사람을, 속도보다 방향을, 그리고 좁은 아집보다는 넓은 배포를 품기로 스스로 약속해 봅니다.
조급함을 여유로, 그렇게 세상을 품을 배포를 가진 한 사람의 리더로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