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21)

제21화 한겨울 껍질 속 하얀 속살을 품은 바다의 영양우유 굴이다.

by 오엔디

겨울바람이 차갑고 매서워질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하얀 생굴을 떠올린다.

바다의 차가움을 껍질 속에 품고도 언제나 영양 가득한 하얀 속살을 유지하는 그 생명.

그리고 그 굴을 삶만큼 사랑했던 오직 한 사람,

한겨울, 내 고향 천북에서 굴을 까며 나를 키워낸 그리운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우리 집 식탁에는 늘 굴이 올라왔다. 그 굴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어머니의 땀과 사랑이 스며든 ‘겨울의 생생 보약’이었다.


그 시절엔 굴이 사랑의 보약인 줄 미처 몰랐다.

어째서 어머니가 온종일 손끝이 부르트도록 굴을 까고, 추운 새벽 갯벌에 나가 굴을 따서 다듬던 이유를. 그런데 겨울이 되면 언제나 우리 집 부엌에서 서해 바다 냄새가 유독 진하게 퍼졌는지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그 굴로 우리를 키웠다기보다는 영양 덩어리 굴이 어머니를 버텨내게 했던 것이었다.

그 억센 껍질에 비해 너무나 하얗고 깨끗한 속살처럼,


그렇게 어머니는 삶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가장 순하고 따뜻한 마음을 꺼내 보이려 애쓰셨다.


어머니의 손끝에 배어 있던 겨울의 순수 생명


보령의 바닷가 중에 천북 굴은 유독 크기가 작다.

하지만 그 속에 간직한 고소한 향은 작지 않다.

서해안의 갯벌이 주는 영양을 그대로 먹고 자라

수분이 적고 고소함이 다른 바다에 비교가 안될 만큼 농축되어 있다.


어머니는 늘 말했다.

“작아도 맛은 진해야지. 사람도, 굴도 그래야 오래가.” 그 말은 어릴 시절에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살아보니 그 말은 어머니가 몸으로 보여준 삶의 방식 그대로였다.


겨울의 갯바람에 손이 트고, 밤늦게까지 굴을 손질해도 어머니는 늘 웃으며 말했다.

“바다는 추워도 굴은 따뜻하지. 사람한테 영양과 맛을 주는.. 참 좋은 것이니까.”

나는 그 말속에서 어머니의 체념이 아닌,

어머니의 의지와 사랑을 가만히 헤아려 읽는다.


보령·통영·여수, 세 바다가 품은 세 가지 인격


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같은 ‘굴’이라도 태어난 바다에 따라 맛이, 향이,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나는 좀 더 자라면서 전국의 굴을 맛보면서 그 미미한 차이와 다양한 바다의 영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 보령 천북 굴 – 작지만 가장 깊은 맛


내 고향 천북의 굴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작은 굴 안에 담긴 농밀한 고소함은

어떤 바다도 흉내 내지 못한다.


갯벌의 미네랄이 주는 깊은 맛,

조수간만의 차가 만든 짧고 강한 생명력.

천북의 굴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크지 않아도 충분히 든든한 맛.

조용하지만 잊히지 않는 굴의 향기까지.

그리고, 북풍 서해의 겨울을 견디는 강인함.


둘, 통영 굴 – 우윳빛 부드러움의 바다


통영 굴은 수하식으로 나란히 줄 맞춰 자라서 그런지 살집이 좋고 통통한 아기살처렴 부드럽다. 한입 깨물면 우유처럼 고소한 육즙이 톡 퍼진다.


이러한 굴은 사람으로 치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만큼 따뜻한 성격이다.

그래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입속에서 사라지듯 매우 부드러운 맛이다.


셋, 여수 돌산 굴 – 가장 단단한 풍미

여수 돌산 굴은 바다가 깊어 그 풍미도 묵직하다.

탱글한 식감, 짙은 맛. 장맛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이 굴은, 삶의 진한 국물을 오래 견딘 사람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품고 있다.


굴이 알려준 ‘겨울을 버티는 방식’


역사 속 위인들도 굴을 사랑한 사람은 많다.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굴을 먹었고,

시저는 영국 원정을 떠나며

‘영국 굴의 맛’을 언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양에는 이런 격언도 있다.

“R이 없는 달에는 굴을 먹지 말라.”

여름철 산란기에는 독성이 생길 수 있고,

굴 특유의 맛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디찬 겨울 굴이 진짜 굴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겨울철 같은 시기에도

더 깊고, 더 단단한 맛을 내는 존재가 있다는 것.

굴은 그런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겨울을 견디는 생명만이 자기 본연의 맛을 갖게 된다.” 그건 어머니가 평생 보여준 태도였다


어머니가 굴을 닮았다는 걸 깨닫기까지


어머니는 늘 바빴다.

바다에서 돌아오면 굴을 씻고, 까고, 끓이고, 굽기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손끝이 다 벗겨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굴을 잡으셨다.


내가 어릴 땐 그게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머니가 강인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바다 곁의 모든 집이 그렇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안다.

어머니는 겨울 바다를 견디면서도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유지하는,

굴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겉은 단단했지만 속은 하얗고 깨끗하며

사람을 살리는 영양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결국, 겨울이 깊어질수록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 글은 나를 다시 고쳐 쓰는 21번째 글이다. 21이라는 숫자는 어쩐지 겨울과 닮았다. 스무 해의 삶을 지나온 뒤, 비로소 조금 깊어지는 자리.


나는 지금도 굴을 먹을 때마다 늘 생각한다.

“어머니의 겨울은 얼마나 차가웠을까. 그 겨울을 견디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한입의 굴 속에서 바다의 짭조름 비릿한 여운이 조금씩 퍼지면,

마치 어머니의 손등 위에 남아 있던 거북등처럼

딱딱한 굳은살과 바람 자국이 파랗게 떠오른다.


나는 오늘도 굴을 먹으며,

어머니의 그 해 겨울을 마음속에서 하나 꺼낸다.

어머니는 겨울 바다의 큰 사랑 같은 사람이었다.


차갑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고요하고 따뜻한 속살을 잃지 않는 사람.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영양이 되고 때론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

그래서 나는 겨울이 오면, 굴이 아니라 어머니가 다시금 그리워진다.


바다는 차갑지만, 굴은 따뜻하다


굴을 먹는다는 건 겨울의 힘을 삼키는 일이고,

어머니가 보여준 삶의 태도를 다시 떠올리는 일이다.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에게 굴도 그러했다.


작고 여리지만 단단하고, 차갑지만 따뜻하고,

외롭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존재. 한겨울 껍질 속 하얀 속살처럼.


우리도 각자의 겨울 속에서 자신만의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내 마음속 제1순위의 겨울은 언제나 ‘하얀 속살을 머금은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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