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연약한 공식이다.

by 슈펭 Super Peng

우리는 관성(慣性)의 잔해 속에서 서로를 발견했다.
익숙한 궤도를 벗어날 용기가 없어
중력을 거부하지 못하는,
자발적인 구속의 첫 문장.
​기억은 투명한 병에 담긴 증류수 같다.
시간의 솥에서 끓어 넘친 감정의 액체.
쓰거나 아린 앙금은 바닥에 침전시키고,
가장 빛나는 환희의 결정체만을 걸러낸다.
남은 건 편파적으로 편집된 역사.
진실은 언제나 투명한 병 뒤에 숨어 있다.
​모든 헌신은 순도 검사를 거쳐야 한다.
타인을 위한 이타심이 그 전부였을까,
아니면 너의 평온을 보고자 하는 나의 이기심을 위한
고도로 설계된 투자였을까.
희생과 자기애가 공존하는 그 경계는
흐린 액체처럼 늘 모호하다.
우리는 눈 감고 질문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유효 기간은 무한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원의 착각.
가장 깊은 신뢰 속에 배신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가장 완벽한 영원 속에서
소멸은 이미 조용히 태어난다.
그것이 사랑이 껴안은,
인간 삶의 연약한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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