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투명한 질문

by 슈펭 Super Peng

어둠이 흐릿하게 차오르는 저녁. 나의 무료(無聊)는 오랜 시간 덧대어진 창백한 껍질 안에 갇혀 있다. 오늘을 덮어버린 채 돌아서면 나는 기꺼이 내 안의 나를 외면한다. 꿈이란, 이미 오래전의 감각. 무겁게 잊혀진 약속의 파편들.


문득 손이 닿은 곳. 시간의 무게를 짊어진 낡은 서랍. 먼지가 희게 봉인한 그 틈을 열자, 과거의 공기가 터져 나왔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 아이의 환한 미소처럼, 몇 번이고 접혔다 펼쳐진 내게 쓴, 혹은 미래에게 보낸 쪽지 한 장.


어린 날의 나는, 느렸으나 어떤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세상의 속도와 무관했던 거북이의 단단한 걸음과 나. 나는 멈추어 서서 숨결로 종이의 주름을 편다. 현재과거가 희미하고도 질긴 시간의 실타래로 엮이는 순간.

미래의 나, 당신은 어디까지 갔나요. 당신의 얼굴 위엔 어떤 흔적이 남았나요. 내가 언젠가 마주해야 할 가장 아득한 경계에 서 있는 당신. 당신은 그 작은 꿈의 모양을 끝내 부서지지 않게 지켜냈나요.


나는 지금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는가. 어떤 지도도 없이 흘러온 것인가. 늘 내 안에서 희미하게 주문을 외우던 아주 먼 과거의 목소리. 그 아이는 무엇을 간절히 원했는가.

그리고, 미래의 당신은 고요히 응답한다. 편지 뒷면의 희미한 연필 자국처럼. "너는 마침내 이곳에 닿았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잊지 않았기에. 네가 꿈꾸던 그 어른이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투명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라."


어제의 지친 일기가 아닌, 서랍 속 아이의 눈빛은 오히려 단호했다. 두려움 없는 여정의 지도를 든 작은 손. 나는 이제 그 아이가 펼쳤던 환한 길을 다시 읽어 내려간다.


먼지 쌓인 서랍과 그 속에 함께 남아있던 순수한 영혼이, 비로소 자라 오늘의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시간을 가로질러 만났다. 나는 주저 없이 내밀어진 손을 잡는다. 함께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하여.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할까요. 어떤 깊이의 삶을 만들어갈까요. 두 손을 단단히 잡은 채 다가올 미지의 미래를 향해 선다면, 어떤 두려움도 우리를 꺾을 수 없다.


나는 아직 아무데도 가지 못했지만, 그저 어둠의 한 구석에서 웅크린 채 살아남아 있었을 뿐이다. 이제 미련 없이 흙먼지를 털고 다시 한 걸음, 다음 한 걸음. 나의 가장 진실했던 꿈이었던 널 믿고서, 나는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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