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 주고, 건넨 만큼 돌려받는 관계를 꿈꿨다.
누가 그런 기준을 정해준 건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도 "관계의 균형 맞추기" 같은 교과서는 없으니까. 그저 나 스스로 마음속에 그려놓은 이상적인 모습이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슷한 무게로 존재하는 것. 한쪽만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수평을 이룬 관계.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 나는 지금 계산하고 있구나.'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은행 창구에 앉아 입출금 내역을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처럼, 나는 관계의 저울 위에 주고받은 것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얼마를 빌려준 것도 아닌데, 현금을 주고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수지타산을 따지고 있는 걸까.
사실 주고받음에 정해진 공식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누군가는 많이 주고도 적게 받고, 누군가는 적게 주고도 많이 받는다. 그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 모든 관계에 영수증이 발행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누가 의무로 지운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건넨 것들이었을 뿐인데.
그래, 무언가를 기대하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진심으로, 100% 순수하게, 아무런 기대 없이 내가 그것들을 건넸을까? 가만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조금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아주 작은 기대 하나쯤은 숨겨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욕심인지,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친절을 베풀 때, 따뜻한 말을 건넬 때, 시간을 내어줄 때, 정말 순수한 마음만 있었을까? 아니면 그 이면 어딘가에는 "나도 언젠가 이런 걸 받을 수 있겠지"라는 작은 희망이 숨어 있었던 걸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순수함과 기대, 이타심과 보상 심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분리되지 않는 채로 공존한다.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이고, 관계라는 것의 미묘함이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0.1 정도는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10을 주었으니 10을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작은 파장이라도, 아주 희미한 울림이라도, 내가 던진 돌멩이가 수면에 닿았다는 증거 하나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말을 건네면 좋은 대답이 돌아온다"는 말을 믿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선행에는 복이 따른다고, 세상은 결국 공평하다고. 그래서 나는 따뜻한 말들을 건넸고, 진심 어린 관심을 보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들을 실천했다.
그런데 오는 말이 없다.
응답이 들리지 않는다.
메아리를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그러자 내가 먼저 건넨 그 모든 말들이, 그 모든 행동들이 갑자기 민망하게 느껴졌다. 혼자만 떠들었던 것 같고, 혼자만 애쓴 것 같고, 혼자만 진심이었던 것 같아서.
간 말이 곱다고 해서 오는 말도 꼭 고와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보낸 그 따뜻함이 허공에 흩어져버린 것만 같아 괜히 쑥스러워졌다.
이게 내가 나약해서일까, 아니면 당연한 감정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라고, 받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베푸는 순간의 기쁨이면 충분하다고. 보답을 바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공허할까.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 그 미묘한 경계 어딘가에서 우리는 늘 흔들린다. 순수하게 주고 싶은데 상처도 받고, 초연하고 싶은데 기대도 하게 되고, 계산하지 않으려 하는데 저울질도 하게 되고.
이런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
관계에서의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완벽한 균형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항상 조금 더 주고, 누군가는 항상 조금 덜 주게 되어 있는 것이 관계라면, 나는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할까.
더 이상 주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계속 주되 기대는 내려놓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당당하게 받을 것을 요구해야 할까?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행복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
그게 사람인가 보다.
계산하면서도 순수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다시 건네고, 기대하면서도 초연하려 애쓰는. 모순투성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건넨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기대하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중에 또 민망해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왜냐하면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균형이 맞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혼자 떠드는 것 같고, 때로는 혼자만 진심인 것 같아도,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관계란,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불완전한 기울어짐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면서도, 다시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우정이고, 인간관계라는 이름의 불완전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