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의 오만

by 슈펭 Super Peng

내 눈은 늘 선명했다. 세상의 모든 윤곽과 색채가 또렷이 박혀 들었고, 흐릿함이라는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눈앞에 새로운 '창'을 들였다. 미세한 색의 빛을 걸러내고, 넘쳐나는 자극 속에서 내 영혼을 보호하는, 오직 나의 선택으로 덧씌워진 투명한 필터였다. 시력을 교정하는 도구라기보다, 세상의 소음에 지친 감각을 잠시 쉬게 하는 작은 방패.
그 필터 너머로 마주한 세상은, 놀랍게도 이전과 달랐다. 분명 같은 길, 같은 사람, 같은 햇살인데도, 모든 것이 새롭게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느껴진다.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미묘한 색의 결, 소음 속에 묻혀 있던 작은 숨소리들이 문득 선명하게 다가선다. 마치 내 존재의 높이가 몇 센티미터쯤 자란 듯, 세상은 이전보다 더 넓고 깊은 호흡으로 펼쳐진다. 시야는 단순히 넓어진 것을 넘어, 마치 가로로 길게 늘어난 그림을 보는 듯 확장되어,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의 가장자리까지 포착된다. 단순히 물리적인 시력이 아니라, 세상을 인지하는 나의 '감각의 지평'과 '마음가짐' 자체가 변한 듯한 기분이다.
이 작은 변화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세상은 늘 그곳에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내가 어떤 '필터'(마음가짐)를 통해, 어떤 '감각의 높이'(인식의 깊이)에서, 어떤 '마음의 각도'(관점)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을 뿐이라는 것을.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피로에 절어 흐릿해져 있던 시야가,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는 작은 필터 하나로 인해 비로소 투명해진 것이다. 이전에는 잡동사니처럼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의미 있는 조각들로 맞춰진다.
고작 안경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이토록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색안경'을 끼고 살아왔던 것일까. 편견이라는 렌즈, 선입견이라는 필터, 혹은 과거의 상처라는 잔금들이 우리의 시야를 흐려놓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 안경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며, 정작 세상의 진짜 얼굴을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용기를 내어 불필요한 필터를 걷어낼 때다. 두려움과 불안, 고정관념이라는 무거운 틀을 깨고, 삶을 향해 새로운 '감각'과 '마음가짐'을 맞춰볼 때다.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자연의 빛과 소리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순간,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시점이 바뀌는 순간, 세상의 지평은 당신의 마음이 그리는 대로 찬란하게 펼쳐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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