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나를 대신해 울었다
내가 처음 물감을 짜낸 건
무언가를 그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붓을 들면 손끝이 말을 잃고,
대신 색이 나를 대변했다.
분홍은 위로였고,
파랑은 견딤이었다.
노랑은 잠깐의 햇살 같았고,
검정은 울음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입을 다문 채 색으로 울었다.
그림은 말이 없었고,
나는 말이 없었고,
다만 색만이 진심이었다.
분홍은 ‘괜찮은 척’이었다.
너무 말랑하고 따뜻해서,
사람들은 내가 밝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분홍 안에
수백 번의 울음을 개어 넣었다.
파랑은 물의 온도였다.
무심한 하루들, 고요한 상처,
가라앉은 감정의 잔해들이
물감처럼 스며들었다.
파란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노랑은… 꿈이었다.
실제로 꺼내기 어려운 색.
노랑을 그릴 수 있는 날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돌아온 날뿐이었다.
그래서 내 그림 속 노랑은
늘 가장 작고, 가장 빛난다.
나는 색을 쓴 게 아니다.
색에 기대어 살아왔다.
나를 다 말할 수 없을 때
색이 나보다 먼저 울었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내 그림을 보고
"색이 예쁘다"고 말하면,
나는 잠시 멈칫한다.
그건 ‘예쁘다’는 말로
퉁치기엔 너무 많은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