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

거울 속 그림자, 그리고 잃어버린 나의 계절

by 슈펭 Super Peng

나는 거울 보는 것이 싫었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치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그 시선들은, 나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사람 자체는 좋아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함께 웃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처음 만나는 자리는 언제나 거대한 장벽처럼, 혹은 나를 삼켜버릴 듯한 심연처럼 느껴졌다. 낯선 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아 발밑으로 꺼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겉모습만 보고 속으로 비웃거나 차별하는 사람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이 나를 '장애인'으로 낙인찍을까 봐 늘 걱정이 앞섰다. 그 시선들이 나를 갉아먹는 칼날 같았고, 나를 점점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춤추고 노래하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더없이 좋아했다. 학교 발표회나 학예회 때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무대에 오르곤 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될 때의 짜릿함, 박수 소리 속에서 느끼던 행복감은 어린 시절 나의 가장 빛나는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환희는 내 외모로 인한 상처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특히 학창 시절은 그 시선들이 잔인한 현실이 되어 내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던 시기였다. 또래 아이들의 웅성거림과 수군거림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틈에서도 나는 늘 혼자였다. 따돌림의 그림자는 늘 내 뒤를 맴돌았고, 교실 안에서도 나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취급받았다. 잊을 수 없는 어느 날, 한 아이의 말이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너는 입만 가리면 참 예쁜데."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온전한 모습으로는 예쁘지 않다'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잔인한 낙인이었다. 그 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끔찍한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렸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가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내 외모의 한 부분이라도 숨기고 싶다는 강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따돌리던 그 친구들에게, 나는 신기할 만큼 차갑게 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정이 많아 아파하면서도 멀리하지 못하는 이상한 성격이었다. 선생님께서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를 열 수 있고,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나는 망설였다. 내 고통이 세상에 알려지고 커지는 것이 두려웠을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나를 괴롭혔던 그 친구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혹시라도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의 미래를 염려하다니,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는 내 생일이었다. 바로 그날,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수술 일정이 잡혔다. 서울에 살지 않는 우리는 엄마와 단둘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평생 잊지 못할 생일에, 케이크 대신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원 수속을 밟는 동안에도 나는 금식 때문에 밥 한술 뜨지 못했다. 혹시 수술이 잘 끝나더라도, 회복할 때까지 몇 달을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수술방으로 들어갈 때, 겁이 많은 우리 엄마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나보다 훨씬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수술실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나는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도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그래서 괜찮은 척, 담담한 척 애써 미소를 지으며 간호사분들에게 농담까지 건넸다. 무섭다고, 아프다고 울고 싶었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날의 생일은 내게 고통과 인내의 의미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런 기괴한 생각마저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외모적인 병이 아닌, 지체장애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기괴한 상상. 아니, 그보다 더 자주, 아예 장애가 없이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지체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상처를 안 받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분들 또한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크고 작은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내게 닥친 고통은 너무나 특별하고, 그래서 더 외로운 종류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외모의 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평가하고, 거리낌 없이 비난의 시선을 던지는 그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차라리 눈에 보이는 신체적 불편함이었다면 덜 외로웠을까 하는 어리석은 상상. 나의 상처는 신체적인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것이었기에, 사람들의 시선 속에 온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더욱 절망적이었던 것은, 비록 내게는 큰 고통이었지만 이 외적인 질병은 '장애등급' 하나 발급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미용'의 영역으로 분류되기 일쑤였고, 그렇기에 어떠한 제도적인 도움이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장애가 있다면 최소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그에 따른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나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고통은 오롯이 나 혼자, 그리고 가족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독 눈치가 빨랐다.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 변화는 물론, 상대방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까지도 너무나 빠르게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미소나 찰나의 찡그림 속에서, 나를 향한 어떤 감정을 읽어내는 데 탁월했다. 그래서 굳이 말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어떤 비난의 말을 뱉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어떤 표정을 짓는지만으로도, 나는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들의 무심한 시선이 내게 닿는 순간, 그리고 그들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거나 눈빛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마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했다. 그들의 무심한 표정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할퀴는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박혔고, 나는 그렇게 소리 없는 비명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에 베이는 고통은, 때로는 직접적인 말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상처들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나만의 아픔이 되어, 내 안에서 곪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끊임없이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와 밤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불면증은 내 몸마저 변화시켰다. 잠 못 이루는 밤들은 마치 끝없는 터널처럼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의 몸무게는 무섭게 불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모든 스트레스는 내 몸의 균형까지 무너뜨렸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갑상선저하증.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체중이 급격하게 20킬로그램이나 늘어나 버렸다. 이제는 '나중에 수술하면 입어야지' 하고 고이 보관해두었던 옷들마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좋아했던 디자인의 옷도, 예전에 나에게 그토록 잘 어울리던 스타일도 모두 이제는 입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옷장 앞에서는 한숨만 나왔고, 결국 나는 그저 몸을 가릴 수 있는, 크고 편안한 옷만 찾게 되었다. 꾸미고 싶어도 입을 수 없는 현실은 또 다른 종류의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내가 가진 마지막 작은 희망마저 산산조각 내는 듯했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절대 내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아픈 현실, 이 상처투성이의 나 자신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가 사라진, 완벽하게 다른 '나'로 성공하고 싶었다. 어렴풋이 일본의 '신분 세탁' 문화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다. 특히 '가부키초' 같은 곳에서 가명이나 새로운 신분을 얻어 과거를 지우고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막연하게 성인이 되기 전부터, 나도 언젠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그들처럼 '신분 세탁'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름도 바꾸고, 아예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과거의 모든 상처와 시선을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사진 찍는 것조차 끔찍이도 싫다. 내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사진이 찍히는 순간, 그 모습이 영원히 '흑역사'로 기록될까 봐 두려웠다. 언젠가는 수술을 통해 지금의 내 외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에, 이 불편한 현재의 모습이 영원히 박제되는 것이 더욱 싫었다. 미래의 내가 달라진 모습으로 행복해질 텐데, 과거의 이 아픈 모습이 계속 남아 나를 따라다닐까 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혹시 내 사진을 보며 욕하거나 비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카메라 앞에서 그 누구보다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지만, 지금은 렌즈가 나를 향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추억을 남기는 평범한 행위마저 내게는 고통이 되었다. 잃어버린 것은 단지 외모에 대한 자신감만이 아니었다. 즐거움을 느끼고 표현하던, 빛나던 어린 날의 나 자신이었다. 이 모든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하는 순간에도 사진을 찍지 못한다. 내게는 여전히 어렵고 버거운 일이다. 이 지긋지긋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정말 수술만이 이 모든 고통의 답일까?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이 절망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는 수술뿐일까? 외모도 자기 관리의 일부분이 되고, 나아가 경쟁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겉모습 때문에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 그리고 나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언제쯤 배울 수 있을까? 끝없는 질문만이 남는다. 나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머릿속은 항상 수많은 고민과 걱정,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숨 쉬고 싶은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그리고 세상의 시선 앞에서 그림자처럼 서성이고 있다. 심리학을 배우며 나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내면의 성장은 아직도 너무나 어렵고 버겁다. 오랜 시간 굳어진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은, 때로는 물리적인 수술보다 더 힘겨운 과정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나를 사랑하고 싶다. 거울 속 내 모습, 그리고 내 몸에 새겨진 수술 자국까지도 나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하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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