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우리 집은 언제나 북적였다. 아빠, 엄마, 할머니, 그리고 오빠. 그 속에서 나는 자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의 내게 할머니는 때때로 미운 존재였다. 할머니는 늘 나만 빼놓고 몰래 오빠에게만 콜라나 달콤한 간식을 쥐여주곤 하셨다. 오빠가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오빠 몫이었다. "남자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듯, 아버지는 지금도 변함없는 남아 선호 사상을 품고 계신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여야 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셔서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한참이 지나야 겨우 문을 열어주시곤 했다. 급하게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을 때면 그 기다림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어린 마음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짜증을 내본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시절 우리 집 문은 번호 키가 아닌 낡은 열쇠문이었는데, 열쇠는 단 두 개뿐이라 내가 가지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단둘이 집에 머물던 시간도 많았다. 할머니의 밥을 차려드리고, 때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할머니의 무료함을 달래드리며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그 시절,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바로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하고.
할머니와 함께 산책이라도 나설 때면, 유독 계단이 많던 빌라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할머니를 등에 업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거나,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야만 했다. 삐걱거리는 유모차마저 내 몫이 될 때면, 어린 나는 가끔 할머니를 '짐'처럼 느끼기도 했다. 그 감정은 순수했지만 동시에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무게였다.
빌라에 살던 그때는 나만의 방이 없었다.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모두 오빠의 차지였다. 그래서 잠도 언제나 할머니 방에서 자곤 했다. 사춘기라는 격렬한 시기를 딱히 겪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여름철 할머니를 씻겨 드리는 일은 정말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챙기기 힘든 어린 나이인데,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다. 오빠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꾸중 듣지 않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혼이 났다. 특히 할머니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를 위한 시간은 온전히 사라지고 누군가를 돌보는 데만 내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낡은 실 바늘에 끼워달라고 할 때면 솔직히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귀를 파드리는 것은 나에게 하나의 놀이였다. 귓속의 복잡한 길을 탐험하듯 귀이개를 넣고 조심스레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와 나 사이에 묘한 교감이 흐르는 듯했다.
할머니를 내 무릎에 눕혀드리는 것도 좋았다. 보드라운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 작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가끔 할머니께서 용돈을 쥐여주실 때면,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사러 달려갔다. 씹기 좋은 부드러운 만두나 푸딩, 그리고 과일 젤리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이가 많이 없으셨을 때부터는 더욱 그랬다. 작은 선물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시던 할머니의 미소는, 그때의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때 생긴 습관은 아직도 내 안에 깊이 남아 있다. 때로 아빠에게 "돈 함부로 쓴다"고 꾸중을 듣기도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기보다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지금도 나에게는 더 큰 행복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 마음들은 이제 따뜻한 사랑으로 변해 내 삶을 채우고 있다.
유독 배탈이 잦았던 나는, 배가 아플 때마다 할머니의 손길을 찾았다. 할머니는 아픈 내 배를 따스하게 만져주시며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 노래하고 "○○이 배는 똥배"라며 장난스럽게 덧붙이셨다. 그 익숙한 노래를 들으며 할머니 옆에 누워있으면 아팠던 배도 신기하게 가라앉곤 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아본 손녀나 손자들이라면 아마 이 기억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혼이 날 때면, 언제나 엄마와 할머니가 나서서 나를 감싸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유로 혼날 때가 많았다. 그때는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를 끓여 마셨는데, 그 무거운 주전자로 아버지께 물을 따라드려야 했다. 조그만 손으로 버둥거리다 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크게 혼이 났다. 그 작은 손으로 무거워 버둥거리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거의 대부분 내가 혼나는 이유는 가정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오빠에게 대들었을 때였다. 때로는 불이익하거나 억울한 일에 아버지께 항변이라도 하면 '말대꾸한다'고 하여 내가 차린 밥을 못 먹게 하시거나, 더 화나시면 밖으로 내쫓으시기도 했다. 아니면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벌을 세우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할머니가 나를 지켜주기 위해 나서주셨다.
엄마는 매우 소녀 같았다. 아버지 앞에 나서서 나를 직접적으로 두둔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서럽게 울고 있거나 집 밖으로 쫓겨나 있으면 조용히 나와 토닥여 주었다. 너무 추운 날이거나 너무 이른 아침에 쫓겨나면, 나는 집 바로 앞에 있는 교회로 대피하기도 했다. 그곳의 작은 불빛과 고요함은 어린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가 그토록 남자답다며 편애하던 오빠는 솔직히 그 고정관념의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오빠는 겁이 많고, 꽤나 여우 같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항상 아버지께 허락을 맡을 일이 생기면 나를 앞세워 항의하게 했다. 엄마 역시 강압적인 아버지께 무언가를 허락받거나 휴일에 어디 놀러 가자고 할 때도 내 입을 통해 소통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가 더욱 '눈엣가시' 같은, 대들고 반항하는 아이로 전락한 것 같았다.
억울한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내가 혼날 때는 언제나 나 혼자 혼이 났지만, 오빠가 사고를 치면 항상 나까지 함께 혼이 났다. 오빠의 일도, 아버지의 일도, 할머니의 일도, 심지어 엄마의 일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 전가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무슨 일이 생겨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아버지는 항상 "넌 왜 그러냐"며 꾸짖으셨다. 욕만 듣고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할 때가 태반이었다.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이사 간 곳도 외곽이라 교통이 불편한데, 오빠의 기름값을 내주며 오빠 차로 출근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도움이 필요해 오빠가 가기 귀찮아하면, 그걸 들은 아버지는 "왜 네 일을 남에게 넘기냐"며 나를 나무라셨다. 거의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인지 지금도 늘 의문이 든다.
집안일, 특히 밥을 짓거나 청소를 하는 일은 '여자답게' 해야 한다고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남자답게' 전구를 갈거나 무엇인가를 고치는 일 또한 내 몫이었다. 건설 쪽에 종사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벽돌을 드는 일에도 여자인 내가 자주 불려갔다. 나는 여자로서도, 남자로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셨다. 그저 모든 것이 당연한 듯, 나의 존재 자체가 집안의 편의를 위한 도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딸들은 어딘가 티가 난다고들 한다. 관계에 대한 집착이나 다른 문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도 혹시 그렇게 보일까 봐 밤늦도록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나의 불안정한 모습이 결국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마주할까 봐, 혹은 나 스스로 그 진실을 인정해야 할까 봐 두려웠다.
어린 시절, 나의 집은 분명 가족으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서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늘 희미한 그림자 같았다. 오빠에게 향하는 분명한 애정, 그 속에 드리워진 남아 선호 사상의 그림자는 어린 나의 눈에도 선명했다. 나에게는 여자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남자로서의 몫까지 기대되면서도, 그 모든 헌신은 당연한 듯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작은 실수나 항변은 곧장 꾸중과 차가운 외면으로 돌아왔다.
그런 배경 속에서 성장한 나는, 타인의 시선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외로움이나 불안정함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딸'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질까 봐 늘 조심했다. 혹시 나의 관계 맺음 방식이나 감정 표현이 남들에게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끊임없이 나를 검열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분명 가족 안에서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해왔다. 그 경험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돌보는 데는 서툴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딸'이라는 꼬리표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의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 중에 있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아직 이 여정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를 찾는 여행 중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삶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진정한 나의 가치와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매고 있다.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마음의 짐들을 하나둘 내려놓고, 온전히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여정. 아직 그 끝은 보이지 않지만,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