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방 안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사랑받고 싶었고, 살아남고 싶었다

by 고요한 방

병원에 다녀왔다. 조울증, 우울증, 양극성 불안장애, ADHD가 다 있다고 한다.

난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눈에는 눈물이 머금어지는데 눈물은 나질 않아. 뭘 어떻게 하라는 말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다 하기 싫다. 다 어긋나 버리고 싶다. 너무 속이 상해서.

부모가 부모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시절. 난 어렸고, 반항할 수조차 없었다. 슬펐고, 죽고 싶었다. 죽이고 싶었고, 사라지길 바랐다. 죄책감 들었고, 슬프고 또 눈물이 났다.

나의 시절. 어린 시절. 큰 시절. 성인 시절. 어느 누구도 내 이야기를 그냥 아무 말 없이 들어주지 않는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들, 나를 훈계하고 고치고 싶은 그들. 난 내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이가 필요하다.

날 혼자 두지 말아줘. 날 쉽게 가벼이 여기지 마. 날 밀지 말고 내치지 마. 내 슬픔을 가벼이 여기지 마. 아무도 모르잖아. 겪지 않았잖아.

어려서부터 부모는 "너를 위해 이렇게 잘했다"는 생색. 그에 보답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억압. 그렇게 자라진 나는 다른 꿈을 꾸질 못했다. 억압되어서, 꿈을 꾸지 못한 채 살아가고.

그들의 말을 거역하면 얼굴이 바닥에 쳐박히듯 짓이겨지고, 무참히 밟히고, 내 의견 하나 내세우지 못한 채 그들의 말대로. 어려서부터 옷, 신발, 장신구조차 내 멋대로 하면 다 벗겨지고 혼이 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흔한 염색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되물으면 같이 밥 먹다 식당을 나가버리고, 나는 또 그를 잡으러 가고, 길 한복판에서 죄송하다고 하고, 그를 달래고, 염색 안 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용서를 받았다.

결혼을 하고, 그들은 그들에게 취해 나를 사랑했으며, 소중한 나의 딸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처럼 취해 산다. 지겹고 지겨운 그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내가 첫 출산하던 그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갓난아이를 니네 집에 데려가지 말고 친정집으로 데려오라고. 아빠가 아빠 할 도리를 하기 위해… 축하한다는 말은 듣지 못한 채.

나는 싫다고 했고, 그에 대한 반응은 욕설이었다. 끝내 나는 축하받지 못했다. 나를 축하해주러 온 친정 엄마는 아버지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며, 비위 하나 못 맞추냐며 질책했고, 나는 출산한 지 1시간도 안 되어 펑펑 울었다.

그때 나의 소중한 외할머니는 내게 "울지 마, 눈 나빠져"라며 위로해주셨고, 나는 가슴에 사무치듯 외롭고 슬펐다.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와 남편과 함께하는 첫 여행. 기대되고 설레었다. 일부러 남편은 나를 생각해서 내 동생과 그의 여자친구의 식사를 사주기 위해 수원으로 갔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행 출발 때 이미 전화가 왔다. 작은아버지가 보험 영업을 하는데 명의를 빌려달라고… 나는 친정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결혼 전 대학 졸업 후 아버지는 내 명의로 대부를 빌리자고 했고, 나는 놀라 서울로 도망치듯 집을 나와 취업을 했다. 엄마가 우울증 걸린 것 같다고, 보고 싶다 하여 대전으로 이직 후 같이 살았고, 사는 내내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화를 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체했다.)

이후 결혼을 하자마자 아버지는 돈이 있는 걸 알고 도박을 하기 위해 500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당연히 안 줬다. 종종 10, 20만 원을 빌리기도 했고, 이제는 "야, 20만 붙여봐"라고 말하기에 돈이 없다고 했다.

이후 여러 번 나 몰래 남편에게 연락하여 만나거나 전화를 하며, 회사 대출 좀 받아봐라, 딸 몰래 비축한 비상금 없냐, 사위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있었기에 위에서 말한 보험 명의 빌려주는 행위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 가족의 첫 여행날. 아버지는 전화를 하여 온갖 욕설을 내뱉고 끊었다.

나는 또 울었다. 나는 왜 울어야 하나. 나는 왜 존중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끊어내지 못했던가.

이후에도 충돌은 여러 번 있었고, 매번 부모는 "우리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부모를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긴다"며 가스라이팅했다. 나는 그저 놀아났다. 도박을 위해 급히 전화를 해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거절하자 나중엔 "너희가 안 빌려줘서 관리비 못 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이게 맞나…

정말 내가 죽어야만 이 고리, 이 관계, 이 오염, 이 질병의 끈이 끊어질 수 있는 걸까.

죽고 싶지 않아. 아이와 남편, 너무 소중해. 우리 아이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고 예쁘다. 남편, 당신은 정말… 미안해… 나를 만나서…

당신은 너무나 따뜻하고 착하고, 선하고, 그릇됨이 없고, 반듯하고, 좋은 사람인데. 나 같은 상처투성이를 만나 당신이 물들어 가는 게 보여. 내가 사라지고 싶고, 이 끈을 좀 끊어내고 싶어. 제발.

하지만 너무 고맙고 사랑해. 세상에 나를 조건 없이, 대가 없이, 감정이 상해도 그저 그냥 사랑해주고, 안쓰러워해주고, 존중해주고, 격려해주고… 다 주고. 처음이야. 그래서 더 좋은가 봐.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해. 아니, 고마워. 그리고 너무 미안해. 당신은 정말 좋은 가정, 부모, 환경에서 자란 것 같아.

나의 시부모님, 정말 감사해. 그 따뜻함이 가장 좋아. 엄격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그저 마냥 사랑해주는. 지적하지 않고 뭐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분들. 그런 분들 밑에서라면 정말 감사히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혹시라도 내가 없더라도, 당신과 시부모님이라면 믿고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아이, 사랑하는 아들.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시켜주고, 서포트 잘해주고, 공부 놓치지 않게 해주고. 감성적으로 힘들어하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잘 들어주고, 잘해줘. 너무 많이 잘 부탁해.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 정말 잘 살길 바래. 혹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번처럼 아프지 않게, 신중하게 잘 보고 고르고. 아이 외롭지 않게, 아이만 생각해줘.

나는 걱정이 많고, 겁도 많아.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어 너무나 살고 싶어. 당신들만 보면 행복해져.

그런데 너무 힘들어. 아무리 해도 그게 안 돼. 병원을 그렇게 다니고 약을 바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까.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죽지 않을 거야. 당신들 무너지는 것 못 봐. 잘 살 거야. 그런데 힘들어.

밖에서 열일하는 당신이 더 힘들지. 다 그만 좀 하고 싶다. 아무도 몰라. 몰라도 돼.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생각 없어. 다 필요 없어.

괜찮아.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아. 슬퍼.

병원에서 가장 큰 감정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슬퍼요"라고 말했다. 엄청나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었고, 좋았는데… 나는 지금 갑자기 슬퍼졌어요. 갑자기인가?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는 게 없어. 하나도 없어. 지겨워. 때려 부수고 싶어. 화가 나.

아이, 남편, 시부모님 빼고는 예쁜 게 없어. 다 두들겨 패고 싶어. 누구에게라도 전화해서 울어봤으면, 말해봤으면 좋겠다.

남편에게 말하면 친정을 미워할까 봐 못 하고, 친정에 말하면 돌아오는 말은 "우린 더 미치겠어. 병원은 우리가 가야 할 판이야. 너만 힘든 거 아니야. 피해의식 좀 그만 가져" 같은 말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내심 나를 걱정하느라 또 힘들어한다. 나는 그들이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게 또 싫다. 동생은 동생대로 바쁘고, 아프고, 힘들고…

없다. 없어…

이 글은 내 안에 오래 눌려 있던 말들을 꺼낸 기록이다. 누군가의 삶과 감정에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기록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익명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