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가 아니라 <엄마가 온다>입니다. 무서울 것 없이 사는 제가 가장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엄마의 잔소리입니다.
살림을 잘 하지 못합니다. 정리도 잘 못합니다. 4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는 막막했어요. 학교는 일찍 끝나, 저는 근무시간이 아이 하교 시간부터 시작이거든요. 엄마가 6개월 정도 저희 집에 거주하면서 아이를 봐주셨어요. 당시 엄마도 힘드셨나 봅니다. 잔소리를 저에게 마구마구 했어요. 집에 먼지 하나 있는 것을 못 보고 계속 청소를 하셨죠. 각자의 이유로 서로가 힘들었던 시간이었던거 같아요. 그때 얻은 교훈은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 였어요. 결국 엄마는 두 손 들고 항복선언, 6개월도 채 안 되어 집으로 가셨답니다. 원래 계획은 2년 도와주신다고 했거든요. 그 후, 엄마의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둘째 딸인 저를 보러 대구에서 옵니다. 하하~지난주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청소할 시간은 없지, 집은 엉망이지, 오면 잔소리는 뻔하지...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실직고했습니다. 청소 안 해 집이 엉망이라구요. 그러자마자 전화기로 들리는 잔소리...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대충 치워봅니다. 딸에게 괜히 하소연해봅니다. 내일 할머니가 오는데 전혀 반갑지 않다고요. 딸이 이유를 묻습니다. "할머니 잔소리가 너무 심하니깐 그렇지." 딸은 해답을 줍니다.
"잔소리 좀 들으면 되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그냥 응, 네 그리고 들어"
맞습니다. 잔소리 그게 뭐가 무섭다고 엄마 기차표를 끊어준 후 부터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잔소리 조금 듣고 엄마와 재미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건데요. 오늘 읽은 책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두려움 극복하기 꼭지를 읽었습니다. 인간은 수많은 것들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아픔, 다른 사람의 판단,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 혼자 있는 것, 추위, 광기,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가면에 불과하다.
맞아요. 엄마의 잔소리도 가면에 불과합니다. 가면을 벗고 엄마라는 존재 자체를 보면 되는 겁니다. 오랜만에 만납니다. 먼 거리도 아닌데 나이가 들수록 더 오기 힘들어하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좋은 추억 만들겠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갖는 대상은 한 가지뿐입니다. 몸을 내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 큰 믿음을 경험하거나 운명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지상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우주에 몸을 던져 천체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다."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엄마에게 나 자신을 송두리째 내 던지고 우주에 몸을 던져 잔소리 행성에서 살아남겠습니다. 매번 엄마가 방문할 때마다 한단계 성장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엄마입니다. 동네 하천에 오늘따라 이쁘게 코스모스가 피어있습니다. 마치 손님을 반기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