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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let them

by 이효명


클랙슨을 확 누른다. 그 차만 아니면 이번 좌회전 신호를 받았는데, 신호를 놓쳤다. 교차로라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노래 한 곡을 모두 들을 정도다. 옆 차는 천천히 갈 거면서 깜빡이를 켠 내 차를 보고 끼워들라 신호라도 보낼 것이지. 좌회전만 하면 집이 금방인데 직진을 하고 돌아가야 한다. 퇴근 시간도 훌쩍 지나버려 집에는 저녁도 못 먹은 딸이 혼자 있는 상황이다. 참지 못해 창문을 내렸다. 내 옆에 선 차에 대고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어이가 없는 듯 쳐다본다. 운전자가 내려 내 차 옆으로 다가온다. 운전에 조금 서툰 여자인듯하다. 하지만 싸움에 서툴지 않다. 여자인 걸 알고 나도 운전석에서 내려 상대방에게 소리를 지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고 결국 경찰이 온다. 사람들은 차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나란히 서 있는 차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궁금해한다. 몇 번의 신호가 변경이 되었지만 뒤 차들은 내 차로 가로막힌 도로 때문에 천천히 돌아서서 지나간다. 결국 큰 싸움이 벌어지고 집에서 아이는 언제 오냐며 전화벨이 울린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2차선에 서 있는 동안 상상해 봤다. 빵빵 클랙슨을 누르고 화낸다고 놓친 신호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옆 차에 대고 큰소리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통쾌하기도 했고 기분도 나아졌다. 사실 상대방 차 유리가 선탠이 되어있어 사실 어떤 운전자가 탔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문신 가득한 운전수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르르 온몸이 떨렸다. 절로 고개를 저었다. 상상하는 사이 다음 신호가 금세 바뀌었다. 조금 돌아 집으로 갔다.

어차피 나는 오늘 늦게 퇴근했다. 아이는 저녁을 늦게 먹을 것이다. 신호는 몇 분 후면 금방 바뀔 것이고 직진을 하고 조금 돌아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늦어봤자 지금보다 5분도 채 늦지 않을 것이다. 그 차 운전사는 조금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부부 싸움을 한 후라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어 일부러 느긋하게 운전했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어떠했는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맞다. 상대방 차에 대고 화를 냈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급히 아이 밥을 차려주고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 마지막 선생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가 있다고 소개했다. 바로 "Just Let Them"이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안되는 건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한다. 어쩔 것인가? 내가 뭐라고 한들 그 험담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남편이 술을 먹고 새벽 3시에 들어왔다고 하자. 이미 일어난 일, 술을 먹기 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딸이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는다? 걱정되고 잔소리도 해본다. 하지만 딸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평생 억지로 따라다니며 공부하라 잔소리하고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날씨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생님은 이어 질문했다. 그는 날씨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날씨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된다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우산을 잘 팔아좋고 날씨가 좋으면 짚신 장사 아들 짚신이 잘 팔려서 좋은 것이다. 주머니 속에서 좋은 것들만 꺼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내 감정, 내 기분은 스스로에게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 안되는 일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최고다. "건행" 건강과 행복의 줄인 말이다. 건강을 위해 매일 달리기와 탁구를 운동 삼아 하고 있다. 행복을 위해서 오늘 하루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그냥 내 할 일을 묵묵히 한다.

걱정을 한다고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내 감정과 기분만 상할 뿐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남들이 뭐라 하는 건 그냥 그들이 뭐라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자세로 살고 싶다. 오늘 내 옆에 서 있는 차를 무심히 내버려뒀다. 오히려 상상만으로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화나는 일,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내 감정과 기분을 먼저 다뤄야겠다. 조금 내버려두고 조금 기다리면 해결되는 일들도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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