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여학생, 수업 시작 시간이 한 시간 지난 뒤 학원에 도착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영어 본문 학습을 이어 수업했다. 문자를 받았냐고 묻는다. 문자를 확인해 보니 수행평가 문제와 실시일자가 적혀 있었다. 바로 내일이다.
마음속으로 이걸 해줘, 말아, 짧은 시간 수십 번 고민했다. 문제를 살펴보니 남은 시간 준비시키면 점수를 잘 받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학생에게 영자신문 해석을 먼저 시켰다. 해석한 걸 다시 한글로 요약했다. 예상문제 두 개 를 뽑고 영어로 자신의 의견을 써보게 했다. 앞으로 시험 전날 이렇게 가지고 오면 절대 안 봐준다고 으름장을 놨다.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나면 집 가는 길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은 그 학생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분명 수행평가를 오늘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오늘 문자를 보내주는 것일까. 심지어 내일 시험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생활은 크게 차이 난다. 이번 고등학교 신입생들부터 교육과정이 변경되어 공부해야 할 과목도 많다. 각 과목마다 제시하는 수행평가도 어렵기도 하다. 모의고사, 중간, 기말고사, 등 치러야 할 시험이 계속이다. 계획을 짜지 않으면 자신이 해야 할 일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학생의 마음속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공부하는 건 힘들다. 책만 펴도 잠은 쏟아지고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 학생의 장점이자 단점이 하나 있다. 야구를 좋아한다. LG 트윈스의 광팬이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도 갈 것이고 야구 관련 유튜브도 볼 것이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할 것이다.
나를 되짚어본다. 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해놓고 바쁘다는 이유로 미룬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만 하고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마감이 임박해 부랴부랴 일을 마무리 짓기도 한다. 학원 수강료 정리하는 일은 매 월 초 해야 하는데 늘 미룬다. 미루다 보니 학부모들은 이제 나보다 먼저 수강료를 알아서 챙겨 보내준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학부모들께 떠미는 거 같아 미안하다. 지난달은 관리비 내는 날도 잊어버렸다.
글 쓰는 것도 어렵다. 생각은 많지만 자리에 가만히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유튜브 보고 싶다. 카톡도 하고 싶다.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이때다 싶어 수다를 길게 나누기도 한다. 곧 다가오는 임영웅의 생일을 앞두고 그가 준비한 이벤트에 당첨될 방법도 궁리해 본다. 마라톤, 탁구, 강아지와 독서모임에서 내가 할 일도 생각한다. 글쓰기가 우선순위지만 늘 뒷전으로 미룬다. 그 학생도 내가 우선순위에 글쓰기를 먼저 둬야 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수행평가, 시험공부가 우선이라는 사실은 알 것이다. 글 쓰고 공부하면 되지만 막상 머리만 복잡하고 또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수업 마지막 순간, 나 딴에 훈육 한다고 잔소리 했다. 네가 할 일은 스스로 챙기고 현명하게 점수도 챙기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침 그 이야기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처럼 들렸다. 맥주 한 잔이 간절하게 생각났다.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벌컥 마시고 유튜브 동영상 하나 보고 놀고 싶은 저녁이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진정한 스승이다라고 생각하며 오늘 할 일을 챙긴다. 집에 오자마자 블로그에 글 하나 썼다.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했다.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그 선생에 그 학생이 만났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너나 잘해라는 말이 마음속으로 피식 새어 나왔다. 학생에게 괜히 꼰대처럼 잔소리했나. 이미 지나간 일 내일 문자메시지로 시험 잘 봤는지 물어봐야겠다.
사람은 모두 똑같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그녀의 입장이 되어주지 못하고 어른 같은 조언만 했다. 또 더 치사한 건 학생 엄마한테 카톡으로 이르기까지 했다. 학원 아이들이 시간 없어 숙제를 못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마치 그것이 하나의 핑계처럼 들렸다.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나 어렸을 때보다 더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고 심지어 선행학습까지 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더 복잡한 정보의 세상 속에서 이른 나이부터 선택이라는 것을 요구받는다.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기를 강요받는다. 심지어 17살의 나이부터 고교학점제로 인해 공부하고 싶은 과목, 자신의 진로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유혹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부터 가장 뿌리치기 힘들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 하라고 강요하는 나, 어쩌면 꼰대 어른 중 한 명이 아닐까 반성한다. 나를 한 번 더 되돌아보며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오늘도 실패하고 또 입에 잔소리 모터를 작동시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