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외로움을 만드는 건 환경이 아닌, 나 자신이다.

by Karma

민족 대명절 추석이다.

여느 가족들처럼 우리 집도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친척들을 찾아뵈었는데

올해는 서울에 있는 아빠의 누나, 고모와 함께였다.


고모는 우리 가족이 예전에 살던 곳 바로 옆동네에서 40년 넘게 살고 계신다. 아빠가 서울에 취직을 하고 엄마와 결혼하여 터를 잡을 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고 들었다. 현재 고모는 혼자 살고 계신다. 고모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고명딸은 홍콩대를 졸업하고 독일인 남편을 만나 수학을 가르치며 먼 타국에서 살고 있다.


혼자 몇 년째 살고 계신다고 들었던 나는 오랜만에 뵙는 고모가 적적해하시진 않을까 많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웬걸, 몇 년은 더 회춘한 얼굴이 아닌가.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고모가 나에게 슬쩍 팔짱을 끼며 말씀하셨다.

“지수야, 고모 집에 오랜만에 놀러 와라. 독일에서 초콜릿이 너무 많이 와서 좀 가져가.”


초콜릿??? 에 홀린(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나는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고모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고모부의 장례식 후 몇 년 만에 와보는 고모네는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점은 곳곳에 딸의 사진, 사위사진이 붙어있었다. 전에 없던 식물도 많이 보였다.


“고모, 언니가 독일로 가고 나서 많이 적적하지는 않으세요?”

자취하는 나에게 준다고 온갖 식료품을 패킹하고 있던 고모는 깔깔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아이고~아가씨,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결혼을 해도 혼자고 자식을 낳아도 혼자야. 다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혼자가 된 건데, 오히려 잘 됐지 뭐~

건강할 때부터 차곡차곡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게 준비하고 있으니까. 다 마음먹기 나름이랍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딱 맞은 것 같았다. 고모를 뵙기 전, 굉장히 울적해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쾌하게 받아치시다니.

물론 그 유쾌함을 얻기까지 그 이면에는 무수한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고모는 혼자가 된 이후 격일로 독거노인분들을 찾아가 말동무를 해드리고 살림을 봐주시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남아버린 공간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며 그 시간을 채워가는 고모.

서로의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삶을 사는 고모를 보며, 외로움은 환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도 5km 러닝을 했다.

서강대교를 달리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달이 유난히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오늘 추석 보름달이군. 열심히 뛰며 소원을 빌었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나에게 행복은 어떤 풍파가 와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단단한 자아를 갖는 것이다.

CALM 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행복이다.


이전 나의 소원 리스트들은 이러했다. ‘수능 잘 보게 해 주세요, 취업 성공하게 해 주세요, 이직 성공하게 해 주세요, 애인 생기게 해 주세요’


그러나 이젠 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단단하면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외로움을 함께의 가치로 풀어내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보름달, 그중에서도 대빵인 추석 보름달님.


소원, 이뤄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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