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머리가 사라져서
허공에 안경을 걸치고 주섬주섬 잠옷을 갈아입을 때
문득 어제 먹다 남은 저녁식사 생각이 나서
없는 입으로 우물우물 차가운 계란찜을 씹어 삼킬 때
문득 정리하지 않은 부엌 생각이 나서
겨우 남은 손으로 더듬더듬 칼에 손을 베일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머리가 어디 있는지
나를 벤 칼을 소중하게 들고 간다 나는 바깥으로
집 앞에는 나무가 있다 몇십 년 묵은 커다란 단풍나무가
나는 나무를 오른다 두꺼운 몸체에 손톱을 끼워 넣으며
머리가 없으니 부딪힐 머리가 없다
손바닥이 까진다 하지만 칼은 여전히 내 손에 있다
기다란 가지를 자른다
칼은 가지보다 강하다 가지를 자르는 건 너무나도 익숙한 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그 뒤로 반응이 없다
떨어진 가지를 머리에 꽂는다 이제 물만 마셔도 자라날 수 있어
안경이 깨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계란찜이 두둑한 배로는 무엇도 두렵지 않으므로
집 천장보다 높은 가지를 꽂고 나는 집에 돌아간다
어느 날 머리가 사라져서
문득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 생각이 나
머리에 가지를 꽂고 집으로 돌아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