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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Jan 31. 2023

극복의 과정들 (6)

< 도전 편 >

햄버거와 운명적인 도전 (feat. 학부 총회)


팀장 임기 종료를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복학 일 년이 마무리됐다. 돌이켜보면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 타인과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비참하게 보일까 봐 기숙사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던 기억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모진 각오만큼 변화할 것은 예상했지만, 훨씬 더 큰 성과에 놀랐다. 세상에.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던 청년이 복학하는 학기부터 대규모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이후 공동체 리더십 팀장까지 맡다니..! 이런 극적인 변화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단지 우연한 일치였거나 일시적인 행운이진 않을까에 대해 의심했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 암울한 현실이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았다.


이러한 내 걱정을 운명의 신이 들었던 것일까. 곧이어 새로운 도전을 나에게 제안했다. 이 만남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5년도 1학기 종료를 앞둔 어느 저녁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한 개의 문자를 받았다. 발신인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학생회'였다. 각 전공의 학생회에선 한 학기 예산안과 결산안을 심의하는 총회를 학기 말에 개최한다. 학칙에 의거하여 일정 수 이상의 학생들이 참석해야만 행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참석 독려 문자가 종종 온다. 이번에도 정족수 미달 탓에 회의가 열리고 있지 않으니, 와달라는 읍소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들은 맘스터치의 '싸이버거' 제공을 미끼로 참여를 유도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학부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학생 정치는 나서기 좋아하는 인싸(insider)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따라서 학부 총회엔 참석해 본 적 없고 그날도 흥미가 없었다(심지어 학생 총회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신비한 이끌림이 또 한 번 느껴졌다. 방금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학부 총회에서 제공하는 햄버거가 먹고 싶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먹어야 한다는 강한 끌림이 생겼다. 나는 총회에 참석하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날 학부 총회에 참석하기로 한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저녁 식사 바로 직후였고, 학부 총회 자체를 잘 몰랐으며, 학생 정치에도 무관심했는데 그날 따라 가고 싶었다. 햄버거가 동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굉장히 익숙한 느낌, 꼭 참석해야만 하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대학교 홍보단과 처음 만났던 순간과 비슷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도서관 4층에 있는 강의실엔 이미 몇십 명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속대로(?) 맘스터치 싸이버거를 받고 빈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전공과 학부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현장에 있던 대부분 사람과 친분이 없었다. 혼자 빈자리에서 햄버거만 조용히 먹었다. 곧이어 정족수가 채워져서 회의가 시작됐다. 예산 및 결산안 통과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회의가 끝나면 뭘 할까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있던 그때, 마지막 순서가 시작됐다. 바로 차기 학부 대표와 부대표의 선출이었다.


'학부'란, 비슷한 두 개의 전공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상담심리전공'과 '사회복지전공'을 합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이다. 두 전공으로 하나의 학부가 구성되다 보니 소속 학생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이하 '상사')의 경우엔 약 520명의 학생이 귀속되어 있었다. 학부 대표직은 그만큼 부담감이 큰 자리였다. 내가 맡기엔 너무 큰 요직으로 생각했고, 학부 대표가 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리더 경험이 많거나 자신감이 높은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나는 다음 학부 대표로 누가 선출될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무도 후보에 올라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누구도 대표직을 맡고 싶지 않았다. 후보로 지명된 학생들이 즉시 거절한 것이다. 이유는 다양했다. 학업에 신경 써야 해서,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해야 해서, 다음 학기 교환학생을 가야 해서 등, 6명의 후보 모두가 개인적인 이유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현장의 모든 사람은 당황했다. 다음 학기 대표를 선출해야 폐회할 수 있는데, 후보가 한 명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다들 곁눈질하며 한 명만 등장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정작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쯤 되니깐 내 심장이 두근거리길 시작했다. 그러나 심리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상사 대표가 되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또한, 학부 행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학부 대표가 되는 일은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이런 일은 커다란 사명감이 있어야 하기에 나는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 박동이 점점 커져서 귀에 들릴 정도로 뛰었다. 그리곤 현재 선택의 갈림길에 섰음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운명처럼 참석한 학부 총회에서 대표직을 선출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운명의 신이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릴수록 점점 더 초조해졌다. "어떡하지? 이건 사랑의 마라톤과 공동체 리더십 팀장과는 차원이 다른 선택인데.. 막상 한다고 했다가 후회하면 어쩌지? 내 선택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면? 내가 정말 이 정도의 그릇이 될까?" 그동안의 자신감이 싹 사라지고 굉장히 갈등했다.


그때,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일면식이 있는 대학 홍보단 후배로서 이번 학기 교수님과 동행한 일본 여행 때 친해진 사이였다.


“저는 XXX 학우를 대표직으로 추천합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 설마 했는데, 진짜 후보로 추천할 줄 몰랐다. 사람들을 지루한 총회로부터 구해줄 구원자의 등장으로 장내는 활기를 되찾았다. 나는 후보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혹여나 나도 사퇴할까 봐 걱정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단상 위에 서는 그 짧은 순간까지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일까? 단지 핑계를 대고 도망가고 싶은 건 아닐까? 결국, 나는 결심을 했다.


“음… 알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을 테지만, 맡겨주시면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행정 업무와 긴 임기란 부담 때문에 대표직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은 나에겐 굉장한 의미가 있다. 모두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내 안의 도전 의식이 더 강했다. 내 사전에서 도전을 피하는 건 ‘도망치는 행위’와 같았다. 과거의 나로부터 변화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도전이 필요했다. 그 절실함이 용기를 만들었고, 현실에 부딪히는 힘을 제공했다. 정말 정말 변화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명의 신은 나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그것을 차버린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1년 임기의 상사 대표에 선출됐다. 그때 단상에서 속으로 외친 각오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한 번 지켜보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대표에 당선된 후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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