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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Jan 14. 2023

(프롤로그) 나는 어떻게
사회공포증을 극복했는가

- 변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소고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타인과 기억을 공유하면서 삶의 발자취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또한, 필요한 이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도 있다. 사실 별 재주가 없는 글쓰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내 경험을 통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실낱같은 힌트, 꿈틀거리는 용기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면 들인 노력에 비해 백배 천배의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실은 고상한 명분보다 더 큰 내적 동기가 있다. 내가 사회공포증을 겪었을 당시 '고통에 대한 무지(無知)'는 가장 괴로운 요소였다. "이 고통은 나 혼자만 겪는 걸까?",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변화할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질문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을 성격의 결함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던 답답함에 숨통이 조였다. 만약 그때 누군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또 변화할 수 있었다며 손을 내밀었다면, 절망 속의 소년에겐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장하게 다짐했다.


"내가 사회공포증을 극복했다고 생각이 들 때,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글로 남기자.
그리고 현재 비슷한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자"


이와 같은 마음을 먹고 난 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기의 커다란 열정만큼 부담이 뒤따랐는데, 막상 글을 작성하려고 하니 수많은 경험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뤄왔다. 그러다가 어떤 한 분이 내 블로그에 댓글로 사회공포증과 관련된 내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 작은 불꽃이 내 엔진을 움직이게 하였다.


이 글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우려는 '비교에서 오는 좌절'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성취했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무너지곤 한다. 현재의 나는 뚜렷한 직업적 성취가 없는데, 대학교 동문 대부분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물론 외국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는 소식을 접하면 초라함을 느낀다. 영어를 못해서, 학부 점수가 낮아서, 대학생 시절 연구 실적이 없어서 등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고선 열등감과 무력감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이러한 분석이 거짓일지라도 그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이 메커니즘을 걱정한다. 앞으로 나와 비교하면서 그대가 가진 다양한 변화의 씨앗을 외면할까 봐 우려한다. "나는 이 사람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깐 변화하지 못할 거야", "나는 이 사람과 다르게 특별하지 않아"라며 본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짓밟을까 봐 걱정이 된다.


앞으로 내가 주장하는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상 내가 경험한 것 이외는 알지 못한다. 고로 이 지면에 등장하지 않는 개념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부분’일 뿐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지금부터 작성하는 내용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다. 내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리도 없고, 또 적용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공포증을 극복하는 방법의 개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와 같다. 모두가 처한 상황과 성격,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감기지만 목감기와 코감기에 처방되는 약이 다르다. 각자의 사정과 성향에 따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충분히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공포증은 극복할 수 있구나! 이 사람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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