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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Jan 17. 2023

사회공포증이란?

(feat. 과학, 무지의 영역에 빛을 비추다)

내가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란 심리 질병 명칭을 알게 된 건 군대를 전역한 후 대학교 복학한 뒤 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 수업에서였다. 그 순간은 마치 나침판이 고장 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선장이 육지를 발견한 것처럼, 또는 뜨거운 사막의 모래 위를 맨발로 터덜터덜 걷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나그네처럼 강렬했다. 인류의 역사가 기원전, 기원후로 나뉘는 것처럼 '사회공포증'이란 심리 질병 명칭을 알게된 사건은 내 삶이 변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초자연적인 힘의 결과로 미스테리한 현상을 이해했다. 수많은 인명을 빼앗은 천재지변을 신의 노여움으로 이해했고, 가뭄과 홍수를 막기 위해 가축을 제물로 바쳤다. 심지어 살아있는 인간을 죽이는 비문명적인 인신공양(人身供養)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와 같은 제사와 주술의 근본적인 명분은 "개인 또는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함에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융성하면서 미지의 영역에 빛을 비추자 미신은 힘을 잃었다. 이제는 낙뢰를 제우스의 철퇴로 믿지 않고 날씨의 변화를 온도와 기압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아기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결실이지 더는 삼신할머니의 선물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현재 인류는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현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추측하며,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 명제는 사회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개인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수많은 질문이 있다. 왜 나에게만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까?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 명확한 답변을 구할 수 없는 실존적인 삶의 물음들을 스스로 질문한다. 이에 대한 대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물질에 기반을 둔 쾌락에 집중하며 애써 무시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답을 찾고자 철학에 빠지기도 하며, 종교란 이름으로 초월적인 신으로부터 답을 구한다. 과학은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에도 개인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로 발전했다. 심리학이란 학문은 나의 과거 암울기를 해석하는데 훌륭한 이정표가 되었다.

심리학에선 사회공포증을 심리질병으로 판단한다.


사회불안장애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상황을 두려워하여 회피하는 장애'이며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관찰되고 평가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현저한 공포나 불안을 지닌다. (예: 연설, 발표, 낯선 사람과 미팅, 다른 사람 앞에서 음식을 먹는 일 등)

▶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거나 불안 증상을 나타내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즉, 부적절한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경멸을 받거나 거부를 당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 사회공포증 환자는 이러한 불안감이 비합리적이거나 과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사회공포증 환자는 그런 상황을 기피하거나, 심한 고통이나 불안을 겪으며 견뎌내고 있다.

▶ 사회공포증 환자는 이러한 공포증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고 있거나 일상생활, 사회생활, 직장 생활 그리고 개인적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


사회공포증 진단 기준들은 내가 겪었던 증상들과 동일했다. 더욱이 '수줍고 내성적인 아동기를 보낸 10대 중반의 청소년에게서 시작된다'라는 역학조사의 결과도 본격적으로 타인을 피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던 16세와 일치했다. 정말 해결하고 싶었던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처럼 수업 시간 중에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태생적으로 성격이 유별나서', '원래 극도로 내성적이라서', '존재 자체가 매력이 없어서' 등, 나 자신을 원망하던 책망이 타파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정체를 알았으니 자연스럽게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볼 길이 열렸다. 사회공포증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해선 다양하니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해당 서적 및 자료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내 경우엔 어린 시절 불안한 양육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었던 경험이 가장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이젠 허상이 아니라 실상을 쫓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변화의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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