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취미가 가져온 낯설지 않은 행복

by 호수

50대 후반이 되니 하루하루가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안일을 하고, 점심을 챙기고, 저녁 무렵이면 온전히 가족을 위해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오다 보니, 정작 제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삶이 단조로움이라는 무채색으로만 물들어 있는 것 같아 숨이 막혔습니다.


그 무채색을 바꿔준 건 뜻밖에도 취미라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우연히 동네 문화센터에서 모집하던 ‘수채화 교실’에 참여하면서, 제 인생은 다시 색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붓을 드는 것도 서툴렀지만, 물감이 종이 위에서 퍼져나가는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잡념도 사라졌습니다. 그 짧은 몰입의 시간이 제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완성된 작품이 서툴러도 괜찮았습니다. 중요한 건 ‘나는 여전히 새로운 걸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지요. 가족들도 제 그림을 보며 웃어주고 응원해주니, 주부로서의 삶과는 또 다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미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자존감을 회복하는 통로가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늘 ‘남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에는 ‘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작은 붓질 하나가 제 마음을 위로하고, 오늘을 버티게 해주듯이 말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도전을 망설이고 있다면, 큰 목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작은 취미, 소소한 배움, 짧은 산책조차도 우리 인생을 다시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도 새 물감을 사들이며 내일의 그림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인생의 두 번째 청춘을 여는 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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