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인턴] 의사가 제 몸 못 챙긴다

이렇게 먹다가는 몸뚱이 다 버리겠어

by 작문의

중만 제 머리 못 깎을까

의사도 제 몸 못 챙긴다

환자분들 교육할 때 항상 하는 말들

담배 끊으세요, 술 끊으세요, 운동하세요, 야채 많이 드세요

퇴근 후 동기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고

체력 방진으로 운동도 못 가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야채라고는 토마토케첩이 전부

담배 안 피우는 거 하나 잘하고 있네

환자분들을 향해 쏘아진 잔소리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여러 가지 안 좋은 건강습관 중 식습관이 제일이다

병원생활을 하며 밥을 '잘' 챙겨 먹는 게 가능한 일일까?

어느새부턴가 식사시간은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업무가 잠잠해질 때로 바뀌었다.

급한 일들이 쏟아질 때는 여유롭게 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또 유독 응급 코올이 쏟아지는 날은 식당에 가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하다

3월 초, 응급 코올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오매불망 콜만 기다리며 굶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식판 가득 음식을 가득 담고 정확히 2숟가락을 먹었을 무렵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날 점심 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급한 일들이 없는 날일지라도 밥 먹는 중 실시간으로 콜이 하나씩 쌓인다

그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급해져 밥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또 '지금 안 먹으면 밥 먹을 시간 없다'라는 생각에 거의 입안으로 밥을 쑤셔 넣는다.

맛이고 뭐고 우걱우걱 먹다 보니 이전보다 배꼬리가 늘었다.

배부름이 느껴지기 전에 식사를 끝내니까

또한 배꼬리를 늘리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바로 미친 유산소 운동량이다

하루 근무를 마치면 기본적으로 1만 보는 걷게 된다.

소아과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에 보통 1만 보 안팎으로 걸었고, 내과를 도는 지금은 적어도 1만 5 천보, 많게는 2만 5 천보까지 걷는다.

그래서일까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장점인지 잘 모르겠다)

살이 안 찌는 걸 넘어 오히려 왜 이렇게 얼굴이 핼쑥해졌냐는 말도 듣는다.

그럴 때 인턴의 평범한 하루 일과를 설명해 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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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밥 먹을 타이밍을 못 잡는 날엔 병원 식당을 포기하고 당직실이나 휴게실에서 때운다

간편하게 먹을 수도 있고 급한 업무를 보고 와서 이어 먹을 수도 있어서 좋다

물론 음식들이 싸늘하게 식어있긴 하지만..

내 식판을 누가 치울까, 나 때문에 앉을자리가 부족해지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휴게실에 있는 음식들은 주로 야식 용이다.

휴게실 음식들은 병원에서 전공의들을 위해 준비해 준다.

일하면서 먹기 좋은 것들을 주다 보니 건강과는 거리가 먼 음식들이다.

하긴 밤 12시에 누가 샐러드와 닭 가슴살을 먹고 싶어 하겠는가

야식이란 자고로 맵고 달고 짠 음식들이다.

건강을 잠시 머리에서 지운다면 우리 병원 휴게실은 거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삼각김밥, 만두, 라면, 초코우유, 시리얼, 음료수, 과자, 케이크..

이 모든 것들을 무한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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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근무를 할 때면, 같이 당직을 하는 동기들과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오늘은 피자, 내일은 치킨, 모레는 족발

월급을 받아서 돈도 있겠다, 밥도 먹어야겠다

일단 맛있는 걸 시키고 본다

맛있다는 뜻은 튀기고, 맵고, 짜고, 달다는 뜻

이번 1달 동안만 치킨, 피자를 몇 번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먹을 때는 맛있고 즐겁다. 고된 하루를 보상하는 느낌이 들면서 스트레스도 풀린다.

하나 속이 더부룩한 아침이 반복되고, 조금씩 삐져나오기 시작하는 뱃살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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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식사는 반드시 챙겨 먹는다.

이전에는 보통 삶은 계란이랑 두유를 먹곤 했다. 아침은 최대한 밍밍하게 먹겠다는 게 내 원칙이다

여전히 이 습관은 잘 지키고 있다.

요즈음 아침으로는 두유, 아몬드 브리즈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들이켠다.

때에 따라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아침은 건강하게 먹는데 점심과 저녁이 참 문제다



최근 야간근로자 건강검진을 하면서 CMC 병원 출신 직업환경의학과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들은 잠도 잘 못 자고, 운동도 안 하고, 먹는 것도 대충 먹다 보니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없던 병도 많이 생긴다고 하셨다.

고혈압이나 이상 지질혈증은 애들 장난이요, 본인께서는 수련받는 동안 돌발성 난청이 3번이나 오셨단다.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시며, 힘들겠지만 밥 제대로 챙겨 먹고 운동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젊어서 괜찮다고 건강을 자신했던 옛날은 갔다

지금은 전날 먹었던 음식에 따라서 그날그날 컨디션이 확실히 다르다

건강 챙긴다고 영양제는 하루에 세알 네 알씨 먹고 있는데 참..

밥은 이렇게 개떡처럼 먹고 영양제를 많이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영양제가 나의 건강을 책임져줄 거라는 망상 속에 살고 있다



엊그제 헬스장에서 잰 인바디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본과 4학년 때 열심히 이바디 점수를 높여놨더니,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 기미가 보인다

인턴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몸 관리는 잘하자고 다짐했건만 한 달 만에 다짐이 무너지려 하다니

다시 마음을 동여매고 정신 차리자

건강을 챙긴다고 바로 티가 나는 건 아니지만 결국 티끌 모아 태산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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