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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Mar 28. 2023

[병원인턴] 첫 오프, 꾸준한 취미의 중요성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나의 취미

06:00시부터 18:00시 까지의 정규 근무

18:00시부터 06:00시 까지의 당직 근무

도합 24시간 근무를 끝내고나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Off가 찾아왔다.

Off. 오프. 보기만해도 보아도 마음이 들뜨고 불러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랑스러운 Off.

극심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사막위를 헤매다 발견한 오아시스, 고구마끝에 들이키는 청량한 사이다

인턴에게 Off란 그런 존재이다.

지난 며칠동안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지만 소중한것은 쉽게 얻을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에 따라 오프를 향한 나의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퇴근 시각인 06:00시에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콜은 멈출줄을 몰랐는데, 특히나 05:50가 넘어서 들어오는 콜들이 조금 원망스러웠던건 비밀아닌 비밀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악착같이 콜을 처리했다. 

얼추 일이 정리가 되면 중간중간 짬을내어 잠을 자곤 하는데 분명 나는 1분남짓 잠을 잤다고 생각했지만 이놈의 시계가 고장이 난건지 세상이 나를 속이는건지 시계를 보면 1시간이 흘러가있더라

시간마저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온몸으로 이해하며 제때 콜처리를 하지 못해 쌓여버린 처방콜들을 죄송한 마음과 함께 빠르게 낸다.

오전 5시가 넘어서는 깜빡 잠이 들면 금방깨어나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누가 인턴을 업어가도 모르는 당직날 오전 5시부터 6시

간호사 선생님들도 이 사실을 아시는지 5시경에는 콜이 제일 적게들어온다.

다음 당직 때는 결코 기절하지 않으리라 오늘도 다시한번 다짐한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사는 동기들은 당직이 끝나면 각자 본가로 향했다.

대부분은 당직일때만 병원 당직실에서 자고, 정규근무가 끝나거나 오프가 있는날에는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가는것 같았다. 

하긴 '당직실'은 말그대로 '당직'을 하는날 쓰라고 있는 방이지 않나

그러나 병원에서 집까지 편도로 3시간도 더 걸리는 나는 오프의 시작과 동시에 당직실 침대에 쓰러지는 걸 택했다. 

퇴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는건 꽤나 슬픈 일이지만 뭐 딱히 갈 곳도 없고, 눈꺼풀도 천근만근이니 당직실 침대보다 더 좋은 장소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 한몸 뉘일곳만 있다면 그곳이 초가삼간이면 어떠하리

그렇게 오랫만에 알람없는 숙면을 취하고나니 어느새 시계는 1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제서야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채 일어나 오후에 있는 약속을 위해 좀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날 오프에는 타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와 보기로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서울이라는 큰물에서 진검승부 해보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상경한 친구이다.

비록 병원은 다르지만 서울 대형병원에서 좌로구르고 우로 구르는 인턴의 생활은 대동소이하더라

근무지가 다르다보니 각자 스케줄이 너무달라 약속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나 운이 좋게도 근무 첫 주에 오프가 겹치는 날이 있었다.

인턴의 노고는 인턴이 제일 잘 안다.

3주 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을 때와 비교했을때 반쪽이 되어버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이심전심으로 측은지심을 느꼈다.

가족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가까운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이번오프는 토, 일 연속 오프였다.

연속으로 이틀이나 쉬는

딱히 약속이 없는 둘째 날 오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당장 다음날 당직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걸 찾아 서울 중심부까지 움직이기는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예전부터 늘 해오던 취미생활들을 하기로 결정했고 병원을 나와 가까운 헬스장으로 향했다.

헬스, 그중에서도 러닝의 매력에 빠진 지는 약 1년 정도 되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자기 계발 팟캐스트 영상을 보다 '런닝은 육체적인 훈련이 아니라 정신적인 훈련이다'라는 말을 접했다.

유산소운동이 체력을 기르는데 좋다는 건 알았지만, 정신까지 훈련이 된다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영상을 본 다음날부터 런닝을 시작했다.



그동안 런닝은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되니까, 초등학생들도 뛸 수 있는 거리인 3km만 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러닝

첫날 간신히 뛴 거리는 고작 800m였다.

시속 10km으로 500m 정도 뛰었을 때 '이제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700m가 넘어서부터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간신히 800m를 뛰고 내려와 물을 마시는데,  나 스스로가 정말로 한심해 보였다.

나는 시속 10km로 고작 800m 밖에 못 뛰는 사람이구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굴복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나약한 멘털로 앞으로 뭘 하겠다고


닝이 정신훈련이라는 팟캐스트가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기르고 싶었다.

그 뒤로 하루에 100m씩 늘려서 달리기 시작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작은 것도 포기한다면 나는 진짜 등신 머저리밖에 안 된다'라고 채찍질했다.

정말 신기했던 건 달리면, 결국 달려진다는 것이다.

폐가 터져버릴 것 같아도, 쓰러질 거 같아도 뛰면 결국 뛰어졌고, 물을 마시면서 조금 쉬면 또 괜찮아졌다.

이렇게 체력도 기르고 정신력도 기를 겸 시작한 런닝이 이제는 나의 헬스장 루틴이 되었고, 매일 목표한 거리를 뛰고 나서 얻는 작은 성취감으로 점점 긍정적이고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전에도 말했듯, 나는 영화동아리 부원이었다.

영화 중에서는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를 본 후, 감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곱씹어 보고  배울 점이 있으면 내 생활에 어떻게 적용을 해볼까 고찰하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삶이 존재하고, 각각의 삶에서 모두 배울 점이 존재한다.

타인의 삶에서 교훈을 배우려면 그들을 만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늘 발을 묶는다.

그래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야 하고, 나는 그런 미디어 중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 영화의 스토리, 생생한 음악

요즈음은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무너져서 드라마도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정주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결국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미디어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늘 영화이다.

요즘은 영화티켓이 15000원으로 거의 금값이다.

가격 때문에 영화를 보기 망설여지지만 통신사 혜택을 이용하거나, 헌혈을 할 때마다 받는 영화관람권으로 알뜰하게 관람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도 쓰고 있다.

주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기차에서 글을 쓰는데 그렇게 하면 이동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로 변환하는 과정은 나름 뼈를 깎는 노력이 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정해야 하고, 기승전결을 구성하고, 생각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길이로 문장을 나누어서, 독자들이 내 글을 읽는 동안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글 밥 작가님의 '어른의 문장력'에서 우리는 쉼표에서 숨을 들이쉬고 마침표에서 숨을 내쉬곤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절한 구간에 위치한 쉼표와 마침표는 독자의 들숨과 날숨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


요즘 읽고 있는 김재성 작가의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는 ' 많은 이들이 나라와 지역에 대한 역사는 소중히 여기면서도 본인 개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글을 쓰기 전에는 '특별하지 않은 나의 삶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나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내 글에 찍히는 조회 수와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특별하지 않은 내 삶도 기록으로 남길만하다는 생각으로 변하였다.  

구 의대생, 현 인턴의 생활을 글로 적으며 내 역사를 기록하고,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의 세 가지 취미는,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해 준다.

요즈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거주지가 지방에서 서울로 바뀌었고, 직업이 변했다.

휴식시간에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늘 실수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온몸의 레이더가 켜져 있어 에너지 소비도 상당하다.

나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쓸 때만큼은 내가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어 편안함을 느낀다.

마치 저장해 놓은 데이터를 복원하는 듯 편안한 기운이 마음 가득 불러져 온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지금 나도 모르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아무래도 불편한 낯섦을 피해 익숙한 편안함을 찾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내가 나와 소통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그 시간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누군가를 소개할 때, 또는 소개받을 때 처음에는 흔히 외형, 직업, 자산 등으로 그 사람을 알아간다.

하나 그 이후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사람의 '취미'를 알아야 한다.

취미야말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번에 설명해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전쟁터이다

모든 청춘들이 직장을 구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

취업을 위해 회사에 나를 맞추고, 직장 생활을 위해 타인에 나를 맞추는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정작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본과 4학년 시절, 미국에서 서브인턴을 하며 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한 달 동안 그들과 지내면서 느꼈던 그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직장 생활만큼이나 본인의 취미생활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내 삶에 직장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을 취미가 차지하는데  그 부분을 소홀하게 생각하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하는 게 미국인들의 생각이었다. 삶이 팍팍해지고,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야 할 시기일수록 우리는 나에게 맞는 꾸준한 취미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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