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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Mar 28. 2023

[병원인턴] 작고 소중한 첫 월급, 부모님 선물드리기

첫 월급 선물로 빨간 내복을 드려도 되나?

모든 처음에는 의미가 있다

첫 입학, 첫 데이트, 첫 해외여행

하나 그중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첫 월급이지 않을까?



오늘은 월급날이다

사실 오늘이 월급날이라는 것은 오늘 아침이 되고서야 알았다.

월급날이 언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에 관심을 꺼둔지는 오래다.

오프가 언제인지, 오늘이 당직인지,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인지만이 나의 최대 관심사일 뿐이다.

잠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다시 잠자고

인턴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하루살이

만일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곧장 인턴을 지원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월급날을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통장으로 입금된 월급은 마치 우연히 받게 된 선물 같았다.

뭐랄까.. 표현하자면 지치지 말고 일하라는 장학금 같은 느낌이랄까

확실히 과외나 여타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받았던 돈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 병원은 직장임과 동시에 학교이기도 하다.

일을 많이 하지만 그만큼 전공의 선생님이나 교수님들께 배우는 것도 많다.

선생님들께 배우는 지식들, 조금씩 늘어가는 술기 실력, 서울 대학병원에 잘 적응해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이런 것들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던지

아니면 철저하게 노예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던지

월급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가 분명할 것이다.



뭐 여러 가지 이유로, 돈의 액수와 관계없이 나는 인턴생활에 큰 불만은 없으나 인턴의 월급은 정말 작다.

월급의 절댓값을 보자면 적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일하는 시간, 일하는 강도를 고려하면 사해의 소금도 이것보다는 달콤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첫 달 월급은 당직비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아직 야간근로자 등록이 안 돼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번 달 말에 야간근로자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다음 달부터 당직수당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번 달에 했었던 야간근무수당은 마지막달에 들어온다고 하니 결국은 조삼모사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금액이 적다 보니 아쉽긴 하다.



첫 월급을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은 이전부터 해왔다

그동안 뒷바라지해 주신 가족에게 선물하기

친구들에게 취업 턱 내기

주변 사람들에게 하기

첫 월급은 나를 위해서 쓰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20대 초반에는 내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것들은 내가 열심히 해서, 온전히 나의 힘으로 쟁취해 왔다고 생각했었다.

아파트 창문 밖으로 논밭이 보이는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의대도 들어가고, 해외도 많이 다니고, 어딜 가서든 기죽지 않고 잘 지냈던 게 나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나의 가족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경험들을 쌓을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여러 단체들

언제나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좋은 기회가 있으면 선뜻 손을 내밀던 주위 사람들이

이 모든 감사함이 양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첫 월급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야겠다고 정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는 결정하지는 않았었다. 아니 못했었다.

선물은 늘 어렵다. 내가 지금 받고 싶은 선물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상대방이 받고 싶은 선물을 예측하는 건 심령 술사의 영역이다.

비싸도 나에게 맞지 않는 선물은 좋은 선물이 아니다.

비싸지 않아도 나에게 필요한 선물은 좋은 선물이다.

우선 가장 고마운 가족들에게 첫 선물을 주기로 결정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유튜브를 찾아가며 공부(?) 했다.

영양제는 너무 뻔하고, 화장품은 내가 잘 모르고, 옷도 개인의 취향을 타는 위험한 선물이고...

그렇다고 명품을 사드리기엔 월급이 부족하고, 또 너무 싼 걸 드리기도 싫고...

하루 온종일 생각을 해보아도, 여러 부모님들을 캐스팅하여 인터뷰한 영상, 길거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을 찾아봐도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최고의 선물은 '현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그동안 나는 '현금'을 선물로 주는 것에 꽤나 부정적이었다.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그 사람에 대해 온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선물에 온전히 담긴다고 생각했기에, 선물은 반드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현금은 성의도 없어 보이고, 그저 돈으로 손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유튜브 속 여러 부모님들의 인터뷰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식이 주는 선물은, 그 어떤 것을 받아도 똑같이 좋으니까 차라리 본인이 원하는 걸 본인께서 고를 수 있는 현금이 제일 좋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하던가

선물의 끝은 현금이었다.

돈 봉투를 받아 드신 부모님들은 퍽 좋아하셨다. 직장에서 몸 고생 마음고생하며 힘들게 번 돈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다 보니, 이 돈을 도저히 쓸 수가 없다는 말씀을 고맙다는 말 뒤에 덧붙이셨다.

정말 돈 벌기는 쉽지 않다. 힘들다.

남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본인이 아닌 자식에게 쓰는 것이 이 얼마나 큰 애정이 담겨있는지 배웠고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는 물가와 집값

당장 먹고 생활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저축까지 더하면 한 달에 벌어야 할 돈이 대체 얼마일까..

지난 28년 동안 이 모든 것을 해오신 부모님의 지난날들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관리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또 그동안 부모님들께서 내주시고 계셨던 여러 공과금이나 휴대폰 요금도 내가 내기 시작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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