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문의 Jun 11. 2023

[병원인턴] 소중한 인턴 동기들

낯선 서울병원 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인연들


'동기[同期]'

단어가 가진 뜻은 여러 가지이지만 나는 그중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교육이나 강습을 받은 사람 또는 학교나 회사 훈련소에서의 같은 기'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동기들을 만나게 된다.

기억의 단편으로만 남아있는 유치원생 시절부터 우리는 동기들을 만났다.

'친구'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던 초중고 시절을 거치고, '동기'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대학생 시절을 거치며 수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그 사이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또 다른 동기들을 만났을 테고, 누군가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새로운 동기를 만났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나처럼 취업을 해서 입사 동기를 만나 동고동락 하고있을 것이고 말이다.

이렇듯 집단에 소속되어 조직생활을 하는 삶을 사는이상 필연적으로 생기게되는 동기들은 좋은 일도 힘든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같이 하게 되며 미우나 고우나 함께하게 되는 일종의 운명공동체가 된다.


동기는 소중하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소중함의 이유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나는 하루중 대부분의 시간을 동기들과 함께 보내고 있는데, 아무리못해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동기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있다.

정규 근무가 시작되는 06시, 근무를 시작하기 10분 전쯤 당직실에서 함께 잡담을 하며 근무를 준비한다.

각자 바쁜 하루를 보내고 근무가 끝나는 18시 무렵 당직실에 삼삼오오 모여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당직 근무를 같이 하게 되는 날에는 방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운 케이스를 함께 고민하기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같이 먹고, 퇴근 후 운동을 같이 가거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치맥을 함께하는 동기들

이사람들은 마치 서울에서 새로 만난 형제와도 같다.


나처럼 타교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하는 경우에는 동기들이 더더욱 소중하다.

본교를 떠나 타교 대학병원으로 인턴을 지원하는 것은 꽤나 많은 리스크를 지고 하는 도전이다.

6년 동안 함께했던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시스템을 떠나 낯선 땅에 하는 맨땅의 헤딩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함만 갖고 떠난 서울행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용감하기만 해서는 단 하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병원의 구조, 병원 내 프로그램 사용법, 병원과 학교의 문화나 분위기,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성향, 근무의 강도 등등

나는 병원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무지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이미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결속이 단단해진 사람들 틈 사이에 잘 녹아들어야만 했다.

쉽지 않을거란 부담감이 꽤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나는 동기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도움을 요청했으며 동기들은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마치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교포가 새로 이민을 온 한국인에게 이민생활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여러병원에서 학생 실습(PK 실습)을 돌았었던 동기들의 내공은 어마어마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수없는 이 농축된 내공을 감사히 전수받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걱정은 점차 줄고 그만큼의 기대감이 커져만 갔다.

거기에 더해서 근처에 맛집이 뭐가 있는지, 시간 날 때는 어디에서 뭘 하면 좋은지 등등

병원 안팎의 생활 모두 동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을수 있었고, 결국 소중한 동기들 덕분에 낯선 서울 생활, 낯선 병원생활에 잘 적응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서로가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이고있는 우리 동기들은 알고 보면 어마어마한 스펙의 소유자들이다.

내 왼쪽에서 젤리를 한 움큼씩 입에 쑤셔 넣으며 깔깔대는 사람은 3개국어에 능통한 대원외고 출신의 해외 명문대를 거친 슈퍼 엘리트

내 오른쪽에서 술에 잔뜩 취해 당직실 침대에 뻗어 떠나가라 코를 골고 있는 사람은 해외 유학파에 영재고 출신, 국내 탑급 명문대를 거친 초 엘리트 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이력만 보면 왠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은데 날마다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 발에 땀이 나도록 병원을 뛰어다니는 인턴 동기라는 사실이 때로는 어안이 벙벙하다.

베란다에서 논과 밭이 보이는 시골출신인 나는 이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또 뿌듯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꽤나 자랑스럽다.


우리 병원처럼 인턴 수가 적은 병원에서 근무하면 힘든 점도 많지만, 그만큼 동기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턴 한 명 한 명에게 주어지는 일의 양이 많다 보니 서로 도움을 요청할 일도, 도움을 줄 일도 많다.

우르르 몰려가 어려운 술기들을 끝끝내 해내고나면 이 사람도 나도 완벽하지 않은 초보 인턴이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전우애가 차오른다.

또 모두가 다같이 힘들면 현실이 어떻든 결국에는 버텨낼 수가 있다.

내 일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옆 사람을 보면 더 힘들어 보이고, 그 옆 사람을 보면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비록 앓는 소리는 하더라도 저 사람도 버티는데 내가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인드가 생긴다.

사실 인턴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인턴일이 그리 힘든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의대생활 6년에 비해 인턴은 겨우 1년만 하는거고, 또 대부분의 선배들이 모두가 해내니까 사실 할만하겠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직접 인턴이 되어보니 할만해서 버틴게 아니라, 주변 동기들과 같이 힘듬을 이겨낸것 이었다.

인턴 4개월차에 접어드는 지금,  함께하는 동기들이 없었다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것이라 생각한다.

몇 달 안 남은 상반기 인턴, 서로 돕고 도우며 낙오자 없이 모두 잘 해내기를 바라본다.




이전 17화 [병원인턴] 작고 소중한 첫 월급, 부모님 선물드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