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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Apr 09. 2023

[병원인턴]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응급상황

지하철역에서 환자가 쓰러졌습니다

올해 휴가 때 쓸 여권을 만들고 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구파발역에서 내리던 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노래소리를 뚫고 들렸다.

지하철역이야 원래 시끄럽지만, 이번에는 분명 평소와는 다른 시끄러움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별생각 없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이 원을 두르고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연속 36시간 근무를 막 마친날이라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꼭 확인해야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어 주머니에 넣고 군중들의 틈 사이로 고개를 넣자, 쓰러져있는 환자분과 그 주위에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이따금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비행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가 괜찮아지면야 다행이지만, 내가 한 응급처치 때문에 환자가 잘못될 경우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던데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 같다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좋은 의도로 한 행동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현실이니까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었더라

현실이 그렇더라도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의사입니다. 혹시 무슨 일인가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들

당황스러움에서 희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변하는 눈동자들

그렇게 내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환자에게로 길을 터주었다.

나는 환자에게도 가자마자 그동안 수십, 수백 번을 연습했던 CPR 상황 프로토콜을 시작했다.



어깨를 치며 의식을, 목동맥을 만져보며 맥박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의식도 있고 맥박도 세게 뛰고 있었다.

심정지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한층 덜어졌고, 주변사람들에게 119 신고를 부탁한 뒤 환자분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변이 마려워서 지하철을 내렸던 동시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단다.

넘어진 상황을 직접 본 게 아니므로, 혹시 모를 경추손상을 막기 위해 목을 움직이지 않도록 안내했다.

혹시 머리 쪽으로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머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았고, 다친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분과 대화를 하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며 인지상태를 파악하고, 팔다리 감각이나 움직임에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환자분의 곁을 지키며 이후 도착한 119 대원분들께서 물어보시는 것들에 대답을 해드렸다.

지하철 관리자분께서 CCTV를 확인해 보니 환자분께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부딪혔단다.

119 대원들은 혹시 모를 머리손상 확인을 위해 우선 주변 응급실로 이송한다고 하였고, 그렇게 지하철역에서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번경험으로 몇 가지 느낀 점들이 있다.

우리나라 CPR교육은 여전히 부족하다.

주변에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하기 이전의 상황을 물어보았을 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의식과 맥박을 물어보았을 때, 의식은 대답해 주었으나 아무도 목동맥을 만져본 사람이 없었다.

혹시 CPR을 했는지, 안 했다면 왜 안 했는지 물어보았을 때는 CPR을 할지 제세동기를 할지 몰라서 일단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고 하였다.



물론 국민모두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을 이해한다.

또 쓰러진 환자분을 무시하지 않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한 것도 박수를 드리고 싶다

환자분이 의식이 있고, 맥박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심정지상황이었다면 문제가 더 커졌을 거란 생각에 아쉬웠던 점들이 계속 떠올랐다.

심폐소생술은 의료전문가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들이 교육만 받는다면 어렵지 않게 시행할 수 있다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주위사람들을 위해서 CPR교육을 필수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사가 이런 상황을 언제 마주쳐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응급의학과 수업을 통해 CPR을 전문적으로 배웠고, 국가고시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 수십수백 번 CPR 연습을 했고 또 CPR 자격증도 있었지만 연습과 실제상황은 달랐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고, 시끄럽고 굉장히 혼란한 상황이며, 사람들이 의사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 상황에서는 연습 때는 고려하지 못했던, 아니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했다.

의사가 그 상황을 잘 해결하려면 CPR상황만큼은 자다가도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내가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주저 없이 행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사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의사가 이전만큼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 되었더라도 결국 이런 응급상황에서 사람들이 믿고 찾는 사람은 의사였다.

내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자극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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