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와 역사

상상 또는 창작과는 다른, 인식을 왜곡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by 꾸기쌤

안녕하세요. 이 글은 2021년, 사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두 드라마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제 유튜브 영상으로 담기 위해 작성된 대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게으름으로 인해서 실제 영상 촬영은 하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나버려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담아보았지만, 의미 있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어제 학교에서 겪었던 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군요? 분명 두 사람은 같은 시점에서 일어난 같은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다르게 구성하고 심지어 다른 생각을 담아서 말을 나누고 있어요. 덕분에 서로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며 다투기까지 합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아, 학생이라면 항상 겪는 수행평가나 모둠 발표 때문인 것 같네요?

A: 어제 내가 수행평가 발표를 거의 다 했잖아. 너무 힘들었어.

B: 그랬었지. 어제 네가 수행평가 발표를 했지. 하지만 옆에서 모둠원들이 많이 도와줬잖아.

A: 걔들이? 걔들은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했어. 준비부터 발표까지 내가 다 했는걸.

B: 에이, 그건 엄살인 것 같은데? 걔들이 나름 준비를 하는 걸 내가 봤는데?

A: 그게 준비한 거라고? 넌 그것만 봐서 그래. 더 대화할 필요가 없네. 그만 이야기하자.

왜 이런 오해가 발생한 걸까요? 몇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해 볼게요.

첫 번째, 그냥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기본적인 대화 태도 때문이긴 하네요. 대화는 사실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실만 주장하니까 다툼이 발생하는 거죠.

두 번째,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이유가 있다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대화가 대화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이유가 없다면 아마 기억(기록)의 오류라는 사람의 기본적 특징 또는 역사적 기록(사료)의 부족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슬슬 제가 역사와 연결하고 있죠?ㅎㅎㅎ 계속 연결을 해볼게요.

세 번째,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실만 끄집어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건 과거의 경험(혹은 사실)으로 구성되는 역사의 특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인류가 겪은 모든 사실의 모임(‘사실로서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실을 기억하고 모아두고 있을 수 없는 관계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혹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위주로 구성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서로의 중요함이 달라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돼버리죠.

네 번째는 세 번째 이유와 밀접합니다. 일기 쓰기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기장을 써본 적이 있죠? 그러면 일기장에 무얼 쓰죠? 기억이 남아서 쓰거나, 중요하게 느낀 것을 쓰거나 하죠? 이렇게 사람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사건)들을 자연스럽게 기억(기록)하게 되는데(‘기록으로서의 역사’), 이미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록하는 사람의 시각과 생각이 들어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시각과 의미 및 감상이 달라져 버립니다. 이러면 또 같은 일에 대해서도 다르게 말하게 되고 잘못하면 다툼이 발생하겠죠?

이렇게 과거의 경험을 사람들끼리 기억, 이야기, 기록 등을 통해서 공유한다는 것부터 ‘역사’라는 것이 시작됩니다. 꼭 위인전이나 박물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역사는 시작되죠. 일상에서 다툼부터 역사의 특징이 반영되거나 찾아볼 수 있죠. 누군가는 사실을 말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왜곡을 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수도 없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인지하고 있든 아니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죠.

사실과 왜곡의 갈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오해가 발생하는 등, 저와 여러분 모두 상대하는 사람마다 일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또한 생각해 봅시다. 이건 이거대로 문제라는 것을 여러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죠?

앞서 저는 과거의 경험을 두고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를 제외하면 역사를 두고 나타나는 갈등과도 연결할 수 있을 텐데요, 기록이나 기억의 거짓,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실의 차이와 같은 사건에 대한 시각 및 생각의 차이가 그것이죠. 따라서 각 개인이 과거(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이 정확하냐 아니냐에 대한 의견 차이도 생기는데 시각이나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자, 이제 이번 주제에 대한 밑밥 깔기가 끝났습니다.(먼산) 지금부터는 과거, 경험, 지난 일, 기억과 기록 모두 ‘역사’라는 단어로 합쳐서 말할게요. 조금 전에 역사에서는 시각과 생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또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사람, 어쩌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으며 다소 치우치더라도 그 의견을 주장할 수 있게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 주장도 그렇지만 역사를 대상으로 한 대중매체 제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대, 인물, 사건을 다루지만, 다양한 시각과 주제로 접근하는 사극, 다큐멘터리, 예능, 토크쇼를 볼 수 있는 거죠. 물론 어느 정도는 비판받는 일들이 자주 있지만, 아주 심한 정도로 매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 이유는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이 모두 존경받을 필요도 없고,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그 공간을 창작이라는 매개로 채우는 영역이 대부분 존재하기 때문이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모두 다른 마당에 조금 전의 이유로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물은 제작할 때 많은 자유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대중매체 제작물, 특히 사극 등에 대한 사람들의 갈등이 심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넘어선 불매운동이나 방영 금지 청원 운동까지 말이죠. 이는 주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왜곡 여부를 두고 많이 발생합니다.

특정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만, 어차피 현시점에서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이상 조금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 아실 테니 꺼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나랏말싸ᆞ미’와 드라마인 ‘조선구마사’, 그리고 요즘 논쟁의 대상인 ‘설강화’입니다. 영화 ‘나랏말싸ᆞ미’는 세종과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왜곡이 문제가 되어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질타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방영한 ‘조선구마사’는 불과 2화 만에 종영되었고, 특히 ‘설강화’는 대중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어요. 역사 창작물은 분명 많은 자유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걸까요?

그것은 사료가 없는 부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또는 ‘누가 봐도 이건 창작이다’라는 부분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그 창작의 자유로 인해 역사적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광해’에서는 기록이 없는 기간 동안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쳐 왕과 닮은 백성이 왕 노릇을 했다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을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도 실제 광해군이라는 임금을 사실과 다르게 그린 모습은 여럿 있지요. 그런데도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에서 비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들이 이건 누가 봐도 제작자의 상상이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고, 왕의 대역이 했던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그 당시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죠. 즉,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존중(-존경이 아닙니다.-)이 느껴진 작품이었던 거죠.

또 다른 사례인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만, 기록에 나오지도 않는 인물들과 단체가 너무 많았으면서도 굳이 왜곡이라는 평가를 듣지 않았죠. 이 역시 당시 여말선초(麗末鮮初)라는 상황에서 각 인물이 추구했던 방향들이 그 당시 실제 흐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라는 새 나라와 방향을 추구하는 인물들과 이에 반대하는 인물들이 대립하는 모습은 당시 정치·사회적인 방향과 큰 틀에선 맞아떨어지거든요. 이렇게 되면 왜곡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창작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당시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를 시청자에게 흥미롭게 전달했으니 전 긍정적으로 봅니다. 덧붙이자면, 여기에서 나오는 기이한 무술, 숨겨진 조직들은 그냥 이건 100% 창작이라는 게 당연하게 확실히 보이니 논란이 될 것도 없죠.


물론 방금 예로 든 두 작품도 세세한 부분에서 사실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앞서 비판의 도마 위에 있다고 이야기한 세 작품은 꽤 경우가 다른 듯합니다.

우선 영화 ‘나랏말싸ᆞ미’에서는 제작자가 단순히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라거나 참신한 시각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잘못됐다고 알려진, 또는 최소한 증거(사료)가 불충분한 이야기를 강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영화에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의미까지 퇴색시키고 있으니, 문제가 큽니다. 단순 사실 왜곡을 넘어서 역사의 방향까지 틀어버린 것이죠. 세종이 아니라 승려인 신미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는 단지 ‘썰’로 끝난다거나, 판타지 장르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실로 보일 수 있어서 세종이 직접 창제했다는 ‘학설’과 같이 신미가 창제했다는 ‘학설’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제 주체가 바뀌어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의미 자체가 변해버릴 수도 있죠. 그리고 상황의 왜곡으로 소소하게(?) 당시 조선 궁중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여러 장면도 꽤 많기도 합니다. 아,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중의 인식’이 계속 중요하게 거론될 예정이니 기억해 주세요.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태종 시절의 좀비와 퇴마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 좀비랑 퇴마? 이건 어차피 판타지인데 왜곡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잖아?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판타지 자체가 문제가 될 건 없어요. 태종이나 세종이 갑옷을 입고 대마왕을 무찔러버리는 판타지 드라마가 나와도 상관없어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조선이라는 국가와 태종 및 왕자들을 마구잡이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태종 이방원 하면 반대파를 마구 숙청하는, 이른바 ‘킬(Kill)방원’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왕권에 도전할 만한 인물들만 골라 숙청하고 나머지 신하들이나 특히 백성들에겐 자애로웠던 임금입니다. 이는 실록에도 잘 드러나는데요, 산 위에서 놀던 백성들이 창덕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발각되는 일이 있었어요. 이때 태종은 백성들을 너그럽게 풀어줍니다. 또 아이들이 왕자들의 이름을 공에 붙이고 차고 놀다가 붙잡혔는데도 ‘아이들이 뭘 알겠냐?’라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런 태종이 아예 백성들을 ‘직접’ 학살해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악령에 쓰이면 본디 성품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할 수 있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이 사실과 다르게 고정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성에게만큼은 자애로운 모습이 사료에 여럿 보였던 태종이 학살자로 인식된다는 것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문제입니다. 해당 인물을 연기한 배우가 ‘존경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는 식으로 사과했었는데, 존경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설마 존경과 존중의 차이를 모르는 건 아니겠죠?

거기에 충녕대군(세종)이 중국에서 보낸 가톨릭 사제 일행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분명 조선 국경 안인데도 중국풍 숙소와 음식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무려 왕자가 구석에서 명나라 공식 사신도 아닌 자들에게 굽신거리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이는 제작 배경이 되는 이들의 의도된 왜곡이 강하게 의심되는 장면이기도 해요. 제가 이야기 초반에 말씀드렸죠? ‘의도된 거짓’ 말이에요. 2010년 후반 이후로 중국 측에서 대놓고 한복이나 김치 등을 자기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상황에서 조선 국경 내 숙소가 중국풍이라는 것과 왕자가 외국에서 파견된 이들에게 하대받는 장면은 제작 과정에서 의도된 거짓이 들어갔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왜곡’을 ‘사실’로 ‘인식’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이 작품은 2화 만에 종영되었습니다.


앞의 두 작품은 그래도 현대 대한민국과 직접 연관되는 부분이 적은데 반해, 드라마 ‘설강화’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이면서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인 민주화 운동과도 연결돼서 더욱 그랬던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한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경제발전 및 산업화)과 함께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성취의 순간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공유된 기억으로 존재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개별 사건이나 흐름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존재하고 평가 또한 다양하고 그것 또한 필요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로 인한 성과 못지않게 그 과정에서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이 있다는 것 역시 많은 증언 및 기록, 연구로 확인됐죠.

21세기 이전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은 단순히 독재 정권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 구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설명입니다. 그 속에는 군사 정변, 정치구조, 대통령, 헌법, 시위와 같이 교과서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 말고도 다양한 경로로 발생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했고, 현재까지도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화 운동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해 다른 해석과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이 주장하는 바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제가 계속 민주화 운동 속의 희생과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사례는 꽤 많습니다. 주로 우리나라가 반공주의를 토대로 공산주의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배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한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내 정치 및 사회적으로 온갖 만행을 현재까지도 벌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이나 공산주의, 간첩과 연결되어 처벌되는 이들이 지속해서 있었습니다. 물론 정말 이들과 연결되어 처벌받는 이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아무 죄도 없고 평범한 학생, 회사원, 노동자, 정치인들이 이를 빙자하여 탄압받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는 거죠.

대표적인 사건이 ‘인혁당 사건(1975)’입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은 박정희 정권이 공포한 유신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주체 국민회의라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출하고 연임의 제한이 없는 상태였어요. 거기다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할 수도 있고, 긴급조치권을 통해 정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었어요. 이에 반대하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나타났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컸다는 말이죠.

이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인혁당 사건’입니다. 인혁당은 인민 혁명당의 줄임말인데요, 딱 공산주의와 연결되는 이름이죠? 이 조직은 무려 북한이 학생 시위를 조종하고 정부를 전복시키려 만들어졌다는데, 이에 가담했다는 8명을 체포하고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무려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고요. 그런데 그 이후 이것이 ‘설강화’에도 등장하는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으로 무고한 8명이 적법한 절차 없이 구금되고 가족과 면회도 어려운 상황에 사형 선고 이후 급박하게 진행된 사건임이 32년 만에 법원의 재판을 통해 다시 확인되었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러한 아픈 장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국가 조직에 의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북한 정권이나 간첩과 연결한 조작된 사건을 통해서요. 그 주축에는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안전기획부’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국가 기관들이 북한의 침략과 전략에 대비하여 전쟁을 미리 방지한 공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그것과 죄가 없는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은 구분해야겠지요. 특히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87년에는 6월 항쟁의 발단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 ‘설강화’에서 ‘간첩’과 ‘민주화 운동’을 연결하는 것은 당시 역사적 피해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 왜곡’이라 생각해요. 이건 제작진의 의도와도 관계없어요. 민주화 운동에 대해 당시 정권은 끊임없이 북한이나 간첩과 연결해 탄압하고 여론에 호도하면서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왜곡이 꼭 거짓말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대중의 인식에 오류를 끼치는 것 역시 왜곡입니다. 제가 역사의 특성을 설명해 드릴 때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실을 기억(기록)한다고 했었죠?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은 주요 드라마 배경을 사실과 같이 인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고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중 매체물은 시청자의 생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주요 매체인 뉴스나 드라마 또는 요즘은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건 그 내용이나 배경이 사실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죠. 제가 역사 전공자잖아요? 저보다 어른분들께서 사극을 보시고 해당 작품 인물이 ~~했는데, 왜 그랬냐고 물어보십니다. 이때 해당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은 사실로 인식된 채로 저에게 질문되는 거죠.

즉, 드라마 ‘설강화’에서 간첩과 민주화 운동의 연결은 꼭 민주화 운동이 간첩들의 음모로 진행되었다고 드라마가 표현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간첩으로 몰리거나 북한이 조종한다는 누명으로 탄압당한 이들이 한편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첩과 민주화 운동을 관련시킨다는 것 자체는 대중의 인식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역사 왜곡’에 다름없습니다. 안기부 요원들이 대학생들의 시위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장면도 그들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적이 없다는 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킬 거고요. 이미 여론의 한편에서는 민주화 운동에 북한 또는 간첩이 많이 연관된 것이 사실 아니냐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오는 현실입니다. ‘설강화’ 제작진들이 역사에 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미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분명 남파 간첩들이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서 몰래 활동한 사례들도 분명히 있었고, 안기부 요원들이 무조건 대학생들의 시위를 볼 때마다 탄압한 건 또 아닐 겁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선택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고 말씀드린 거에요. 만약에 제가 부모님께 혼난 사례만 쭉 나열해서 공개하면 이걸 보는 사람마다 제가 문제아인 줄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로 비유를 들어봅니다.(먼산)


역사라는 것은 특성상 수많은 해석과 견해와 생각이 존재할 수 있고, 당연히 이를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의 목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고, 많은 대중에게 전달되어 특정한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뉴스, 영화, 드라마, 유튜브에서는 여러 종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실제 사실을 교묘히 취사선택해서 대중의 인식을 변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우리의 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인식이 잘못 변하게 된다면 누군가는 다시금 피해를 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친구와 가족, 나 자신이 될지 모릅니다.


장황하고 긴글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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