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앞에 내리는 새해 첫 눈을 바라보며(2018)

by 꾸기쌤

영화를 한 편 보고 돌아오는 차안.


창문 밖으로 하얀 티끌 같이 보이는 것들이 하나 하나씩 내려온다.


밤새 다시금 그칠지 알 수는 없지만,


몇 주 동안 몇 번이나 견조주의보로 재난 알림이 올 정도로


메말랐던 강릉에 수분을 머금은 아이들이 내려온다.


불빛에 반짝이며 살랑거리면서 내려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이제 조금은 덜 건조해지려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다.


방학한지도 이제 열흘이 지나,


살랑거리는 아기(?) 눈송이들을 차안에서


풋풋한 마음으로 바라볼 정도의 여유가 익숙해지고 있다.


학교에 근무하러 가던 평소처럼 하루하루가 치열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지내다보니


방학이라고 이불 속에만 있을 수는 없도록


매일 할 일들이 오전, 오후, 저녁에 각각 생기긴 한다.


그래도 나, 또는 사랑하는 이와 관련된 일들만 해도 되니


평소보다는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


사람이


이겨낼 정도의 고민이 생기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왔다리 갔다리 하지만,


지금처럼 적당히 바쁨과 여유가 함께 있을 때


풍경을 바라보며 더 진솔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듯 하다.


오늘 눈 앞에서 빛을 반사하며 살랑이는 아기 눈들을 보고 있자니,


사실 참 별 거 없는 아주 자그마한 얼름 조각들에 불과한 아이들이


나의 눈에 즐거움을 주고,


나의 마음에 감성을 불어넣고,


나의 손으로 하여금 생각이 담긴 글을 쓰게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현미경으로 보면 눈 조각들은 참 기이하고 예술적으로 생겼다.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빛에 반짝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냥 공기의 흐름따라 힘없이 내리는 것이 눈 조각일텐데,


은조각들이 떨어진 것도 아닐텐데, 내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다.


크나큰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것들이


가끔씩이나마 변화와 움직임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것들은 워낙 다양하여 다 추릴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큰 것(?)들에 의해서는 좀 처럼 잘 움직이진 않는다.


모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미국에서 총기사건으로 수십명이 죽어도,


남북에 전쟁의 위기가 고조(또는 연출)되어도,


사람들은 당장에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곧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p.s : 이런 일들은 큰 힘을 가진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처럼 살랑거리는 아기 눈을 보면서,


거리의 버스킹을 보면서, 상대방의 아무 뜻없는 말을 들으면서도..(대부분의 짝사랑이나 오해는 여기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모든 사례들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내 감상이고 생각에 지나지 않긴 하다.


다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민감하기 쉽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작은 것에 크게 영향받고 심지어 변화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가진 작은 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작은 것들의 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그 작은 것들로 타인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과 타인들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 힘이 있다는 사실을.


나의 중학교 2학년 역사선생님(은사님)의 순간순간의 올곳음이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를 기대하게 했으며,


(자랑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손수레를 끌며 오르막을 오르던


할머니를 도왔던 단 한 번의 기억이 나의 마음가짐을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내가 가진 것이 작은 것 뿐이라고 실망할 수도 있고,


내가 행했던 작은 것들이 타인에게 끼치는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또 새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작은 것들에 의해 마음과 행동들에 변화가 생겼는지..


차 밖으로 내렸던 반짝이는 아기 눈들을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듯이,


(사실이 아니겠지만) 나 스스로 못났다고 봤던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어준다면, 또 어떤 기적이 우리에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 않을까.


또 모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려고 한다.


기적은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것과 병자가 한 순간에 낫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야구를 싫어했던 아주머니가 아이의 바램을 위해서 야구장에 갈 마음이 생기는 것 또한 기적이다.


나의 작은 것들로 인해 나와 주변 사람의 마음에


반짝이는 아기 눈만큼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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