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일주를 결심한 이유
- 지금 현재의 힘보다 더 많은 무게를 치고 운동을 하시는 것 같다.
- 너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거 아냐? 왜 그렇게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몇 년 전까지 그런 소리를 들었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다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훨씬 늦었기에, 짊어져야 할 것들도 제법 있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소설을 쓴다면 나락까지 인물을 몰아넣는 형태로 쓰고 싶다 생각했나 보다. 익은 생선의 두 눈이 진자처럼 딱- 딱-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식으로 말이다.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조깅 이후 어느 대교를 건널 때였으리라. 가끔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쌩하니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대부분은 속으로 욕을 하거나 삿대질을 한다. 하지만 그때 든 생각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치인 다음 난간에 몇 번 머리를 부딪히면 속에 든 모든 것들은 해방이 되었을 것 같았기에 더더욱. 누군가는 그것을 혐오스럽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것도 괜찮은 죽음이리라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더더욱.
이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저 생각들을 어떻게든 짓눌러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더더욱. 이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운동을 하고 싶었다. 러닝머신을 뛰다가 심한 타박상을 입어도 뛰고, 가끔은 혼자서 운동할 때 고함도 지르곤 했다. 그러면 잠은 그럭저럭 왔다. 며칠 지나면 아픈 것도 다 회복이 되었고. 이것만이 당시에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유일한 무엇이었다. 그 외에는 신경도 쓰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것조차도 앞의 말들을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몸을 혹사시키는 게 맞을지, 제대로 살기 위해 버둥대는 게 맞는지. 마침 부모님께서도 너무 너 스스로를 감금하는 거 같으니 이참에 잠깐 떠나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말을 꺼내셨다. 해외든 국내든 말이다. 그러면서 견문도 넓히고 머리도 식히라는 뜻이리라. 국가 지원도 이번달까지였다. 그렇다면 한 번쯤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주도를 완주하자. 3박 4일로.'
이 정도라면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기 위해 버둥댈 힘이나 근성이 진짜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등등. 마침 날도 정신이 나가떨어질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스물, 인천의 어느 곳에서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을 떠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를 대면했을 때의 그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 10년 가까이 된 기억이기 때문인지 그조차도 가물가물했다. 그랬기에 더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딘가에선 이런 존재, 저기에선 저런 존재, 그런 곳에서는 그런 존재라는, 모든 것을 담은 상태로 부딪히는 것. 그것만이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저들을 납득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떠날 시간이었다. 멀리, 아주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