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센터는 닫혔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이 일에 대한 해결책 정도는 준비했을 터. 인증부스에든 인증센터 안에든 간에. 아니면 웹사이트나. 실제로 부스에 이런 일에 대한 해결책이 있었다. 여기에 방문했음을 인증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인정해 주겠다나. 사진처럼. 지금 생각하면 사진 또한 조작이 가능하니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은 해봐야 하니까.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이전까지 있었던 동반자도 그렇고. 이제는 제 갈 길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이전부터 찾았던, 그 길.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완주하기로 결심한 이상 이걸 무르는 건 웃길 뿐이다. 숙소까지 다 예약한 상태고. 무엇보다 그간의 자기를 감금했던 시간이 아까웠다. 살아있어도 괜찮은지를 확신할 수 없어서 했던…… 자기 감금. 수많은 생각들이 전신을 삼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다. 환청을 듣거나 차에 치이기 직전의 행동에 환멸감이 든다든가.
그때마다 운동을 했다. 집에 들어가면 잠 외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는 그러다 결국 죽을 수도 있다며 경고했지만…… 그런 걸 그때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지 보고 싶었으니까. 어디까지 내가 갈 수 있는지도 보고 싶었고. 자살이니 자해니 하는 것도 그때는 상관없었기에 더더욱. 그럴수록 더욱 붙들 뿐이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일에. 그것이 설령 순환논증의 오류로 결론이 난다 해도 좋았다. 적어도 그걸 모르고 죽기는 싫었으니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취직에 필요한 공부나 하라는 식으로. 그럴수록 더더욱 마음을 닫을 뿐이었다. 이 이상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살아야 할 이유까지도. 허연 시인의 「내가 나비라는 생각」 속 화자가, 마지막에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이라 그랬듯. 노을이 지면 나방이 그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 나비도 생명이기에 언젠가 죽을 운명이고.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고 순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절함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 여행도 그럴지 모른다. 자전거 여행은 날씨나 체력에 따른 일정 변동이 심하니까. 더군다나 제주도는 비 자체가 자주, 그리고 많이 내리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 날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렇지 않았어도 힘들기는 동일하리라. 자전거 여행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시간은 시간대로 오래 걸리고. 홈페이지에는 보통이다 쉽다 그러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날씨 정도일까? 날이 개면서 하나 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럴수록 주변은 더더욱 잘 보이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대면하기도 그만큼 쉬워진다. 아무런 방해가 없으니까. <파이트 클럽>이라는 영화에서 그랬던가? 진심으로 싸우면 너 자신을 알게 된다고. 정확히는 싸워본 적이 없으면 너 자신을 얼마나 알겠냐는 말이었던 것 같지만……. 더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유치환의 「생명의 서 1」에서.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생각해 보면, 모든 시간들에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가르치는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무한경쟁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공이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 등은 어느 순간부터 이분법에 가까워졌다. 무엇과 왜가 빠진 성공을 성공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개인의 시간은 레디메이드로 수렴한 지 오래다. 언제는 뭘 해야만 한다는 말이 should가 아닌 must가 되고. 그걸 묻는 시간이 곧 투쟁이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서 규정과 한 번 부딪혀보는…….
그 순간들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곤 했다. 동인지나 출판사 등에 원고를 투고할 때도 그렇고. 그게 내게는 후회 없는 싸움이었으니까. 이유까지 알게 되면 더 좋았고. 자전거 여행 같은 경우는 그러지 못하지만……. 대신 풍경처럼, 잠깐이나마 시선을 둘러보게 하는 존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가끔 책이나 동영상에서만 접했던 야생동물들도 보고. 용두암에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므로 그걸 꿈꾸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다. 용두암 아래는 여전히 아름다우니까. 가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았고.
이 또한 자전거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하며 다리는 페달을 밟을 뿐이다. 눈으로는 뒤와 주변을 둘러보면서. 혹시나 기억을 떠올릴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기억은 없다지만……. 애초에 지금 달리는 길이 환상(幻想) 아닌 환상(環狀)일지라도 좋았다. 그런, 닫힌 순환 속에도 기억들은 존재하니까. 기억을 보내는 건 어디까지나 기억을 하는 주체인 점도 그렇고. 어차피 제주도는 흔한 여행지이니 그럴 일은 없으리라 믿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