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 지나도…….

by chldew

십 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공 조형물이나 비품만 해도 그랬다. 고가도로나 대교는 우리가 지나다닐 때마다 조금씩 금이 가고 내려앉으며 비품은 쓸수록 얼룩이 늘어난다. 그래서 모든 학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개념들을 언급한다. 회계학의 감가상각이나 토목공학의 안전기준처럼. 차이점이라면 이 현상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점 정도일까? 가끔은 하나에 뭉치기도 하지만.


그런 점에서 개인은 자유롭다. 덜 소유할수록 더더욱. 금전적인 요소 등을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 한 가지만 잘하기도 힘들다는 점과 도구 자체에도 한계가 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리라. 무전여행이니 무소유의 여행이니 하는 여행 또한 이런 점에서 한 때 유행했을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말은 했지만, 이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완전한 무전은 겪은 적 없으니까. 요즘은 그런 류의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고. 국유지는 물론이고 개인 사유지까지 늘어나니까. 운이 좋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제주도는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토 자체도 좁거니와 제주도 자체가 환경 보호 구역이니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뭔가를 할 생각도 없고. 다른 쪽의 변화에 눈길이 간 것도 이 때문이었고. 나의 기억이나, 변화를 거부하는 변화 같은……. 처음에 말했던 구체적인 물체들의 변화는 물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도와 영토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지도는 현재나 그 당시의 기억을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다. 영토 또한 구체적인 물체고.


하지만 시간이나 변화의 영역으로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영토가 변하면 지도도 변하지만, 지도가 변한다고 영토가 변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영토가 없는 세상에는 지도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가 어디인지를 표시할 이유가 없으니까. 있어봤자 보통은 불쏘시개 정도요 잘하면 기존의 인류가 썼던 도구들 중 하나로 박물관이나 고서에 남을 무엇일 터이고. 나침반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처음에 언급한 구체적인 물체들의 변화가 왜 물체에만 국한되지 않는지 감이 잡히는가?


우리, 나아가 모든 생명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 생존과 관련이 있다면 더더욱. 죽음은 모두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운 개념이니까. 하지만…… 생명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생존과 관련이 있지는 않다. 정확히는 기억들 중 일부를 생존과 엮기에 생존과 관련이 있게 되는 거라 해야 할까? 감성적인 사진에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수익을 창출하는 식으로. 이 또한 무조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여행의 기억 중 일부분을 남기는 경우가 돈벌이 등의 문제 이전과 관련이 있듯이.


나의 기억도 그랬다. 용두암 이후의 골목을 지나갔을 때, 문득 건너편의 골목을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간판이 보였기 때문일까? 교차로에 서기 전까지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일이나 운동을 할 때는 물 외에는 뭔가를 먹는 걸 싫어함에도 입 안에는 침이 고였다. 객주리 조림. 꼴깍 소리를 따라 내려간 침이 올려 보낸 음식의 정체였다. 보통은 살코기를 떠올렸겠지만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간. 객주리 간 그 특유의 고소하고 녹진한 그 느낌을 안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신선도와 제철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 느낌 아래로도 분명 기억들은 있으리라. 어떤 형태로든. 단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한동안은 비어있는 건 아닐까. 새로운 기억을 넣거나 그와 관련이 있는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식으로. 무지개색으로 칠한 경계블록처럼. 무엇을 위해서 사람들은 그 돌들을 두었을까. 처음에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굳이 화려하게 칠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 화려하게 칠할 생각이었으면 과속 방지턱처럼 칠하거나. 그쪽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하지 않은가. 인건비나 페인트 비용도 아낄 수 있고.


모든 존재에는 그만의 의미가 있다 했던가? 어릴 적에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대사였음에도, 이 말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그 말 이후로 바라본 세상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걸 사용하는 방식과 방향 등에 따라 평가가 갈릴 뿐이다. 복합적이라는 말도 그렇고. 그렇다면 무지개색 블록은 어떤 존재일까. 어느 블록에 앉아 냒싯대를 내린 소년 동상의 낚싯대에는 그 가치가 걸려 있을까. 도로 왼편의 식당가가 북적이든 아니든…… 말없이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뭐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누군가 잡혀주는 식으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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