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기억만의 유일한 문장부호

by chldew

우리가 자는 시간에 뇌는 기억을 정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잘 땐 잘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랬고.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해도. 그 순간부터 잠에는 다른 정의가 붙는다. 이전부터 있었던 정의일지도 모르고, 누가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 가지는 동일하리라. 자신들의 내일을 준비하고자 오늘을 마무리하는 시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건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내일은 다를 거라는 꿈을 꾸기에? 둘 다 비슷한 맥락이겠지만…….


하지만 그 정의는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만약 의미가 있었다면 진작에 변화가 있었을 테니까. 이런 정의를 누군가가 이미 내리지 않았을 이유가 없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더군다나 우리나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빨리빨리. 택배나 배달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기가 그 처지일 때는 주문을 요청한 사람들을 욕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는 왜 이렇게 물건이 안 들어오냐며 욕하는……. 가끔 사정을 알면 그렇구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쉼도, 그렇게 팔아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걸까. 수많은 누릴 권리들이 그랬듯이. 그 형태나 이름도 다양하다. 당장 떠오르는 거라면 힐링이나 치유 정도이리라. 좀 더 익숙한 영역으로 간다면 지금 떠나는 여행도 포함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저마다의 이면이 보고 싶었다. 쉼의 대가나 전제 등등. 살다보면 알게 될 거라는 식의 말에는 질린 지 오래였다. 어떻게 살아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기에 더더욱. 조만간 나올 인증센터에 가면 깨달을 수 있을까.


그조차도 지금은 모르겠다. 바로 옆의 차도를 달리는 차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뒤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때문에?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페달을 밟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마음놓고 쉴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겠고. 그건 일종의 습관 같은 거랄까. 아니면 일종의 유행이거나. 뭔가를 끝내지 않으면 쉬어도 쉰다는 느낌이 없었다. 운동할 때나 일할 때는 뭘 먹는 게 싫었고. 포도당 같은 보조식품조차도.


입 안이 단내로 충만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버프로 입을 가리고 달렸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버프를 쓴 건 아니었다. 버프를 쓰면 앞서 언급했던 통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르막을 오를 때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럼에도 버프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름이라면 더더욱. 이맘때의 자전거 도로를 해질녘 쯤에 달려본 적이 있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딧물 등이 섞인 날벌레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의 기분을.


그런 곳들을 지날 때마다 수염고래가 된 기분이었다. 한 덩어리로 뭉친 멸치나 정어리 같은 잔챙이들을 삼키는, 그런 고래 말이다. 차이점이라면 눈 앞의 날벌레 떼를 사냥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점 정도일까. 간에 기별도 안 가거니와 호흡하는데도 방해가 되니 말이다. 눈이나 코로 들어갔을 때의 귀찮음은 별개고. 러너들이라면 그래도 사정이 조금 낫다. 자전거만큼 빠르게 달릴 수 없는 대신 날벌레 떼를 피하기는 조금 더 수월하니까. 그럼에도 날벌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서 버프를 쓰기도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날벌레를 접할 수 없었다. 바닷가 바로 옆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그늘진 곳이 없어서? 뭐가 되었든 이것 또한 그런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한 곳은 깨끗하니까. 마침 고개를 드니 우측 해안가의 남녀 둘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바다와 바위들 또한 그 자체로 살아있었고. 이 쯤 되면 잠깐이나마 버프를 내려도 될 것 같았다. 그간 있었던 단내도 보내줄 겸.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이 가슴 속으로 들어올 테니까.


오늘이야 이 순간이 들어오지만, 떠나는 단내의 자리를 무엇이 채우는지는 항상 미스터리다. 이 순간이라는 말은 항상 같지 않으니까. 풍경이나 그 속을 채우는 존재들까지도. 같은 장소에 가도 그 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보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말한 그리스의 철학자의 말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이 순간들을 사랑하고 담으려는 게 아닐까. 모든 순간을 꽃봉오리라 말하고. 자전거는 그걸 긍정하는 듯 굴러가고 있었다. 이전의 단내가 떠난 자리 위로 들어온 존재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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