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신 거예요?"
뒤를 돌아보니 라이더 둘이 있었다. 아침의 항구서 출발한 사람들 중 한둘이었을까? 아니면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온 사람이거나. 헬멧과 버프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떻게 왔는지도 마찬가지고. 약간의 부러움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같은 길을 걷는 이상 다 같은 여행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더더욱. 단지 그 연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할 뿐이다. 자전거에 빠지게 만들었던 친구를 생각하면 더더욱.
막 스무 살이 된 어느 날이었다. 집에 자전거가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우선은 자전거를 가지고 친구를 만났다. 하도 안 타서 고철에 가까웠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근처 자전거 가게 점원은 차라리 새 자전거를 사라고 했다. 수리비가 더 나오니까. 고민 끝에 16만 원짜리 작은 자전거를 고른 뒤 친구의 로드바이크와 몇 번 합을 맞췄으나 잘 타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멀리 가보고도 싶었고.
이때부터 16만 원짜리 자전거로 이곳저곳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서울 시내는 기본이고 인천 아라뱃길이나 운길산까지. 물론 무리한 적도 많았다. 정서진에 갔다 왔을 때는 팔다리가 새빨개져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워버렸으니까. 근데,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간조 때의 정서진을 봤기 때문일까? 그것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이후로 자전거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이상의 풍경을 접한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접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럼에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유는 간단했다.
'최소한, 죽더라도 내 삶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알고 죽고 싶다. 거기에 도달까지 하면 더 좋고.'
그때부터 자전거 여행에 빠졌다. 국토종주나 동해안 여행까지. 가끔 자전거에 빠지게 한 친구에게 사진으로나마 풍경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만족하라면서.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가 없이 떠나는 여행은 어딘가 허전했다.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여행은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커플이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런 허전함이 더욱 커진다. 틱틱거리면서도 믿을 수 있으니까. 평소에도 그랬고.
이런 기억이 없었다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냐면 그렇지도 않다. 누군가와 같이 많은 걸 해보자는 말이 제일 좋았으니까. 부모님 또한 그런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들과 다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같이 떠난 여행에서도 아버지가 마이페이스이셨기 때문일까? 힘든 일을 할 때는 은근슬쩍 빠지거나 하는 식으로. 캠핑이나 피서 같은 걸 안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길 바라셨다. 자기 관리도 되고 다른 일들도 같이 거들어주는 식으로.
부모님이 이런 사람이 아니셨어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으리라. 돈이나 그런 게 아니라도 누군가와 뭔가를 함께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런 순간에 가장 솔직해지기도 하고. 어딘가에 속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공동체에게 공동으로 주어진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끝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답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맞는 거 같으니까. 어느 쪽으로 가도 사랑이라는 개념과 연결이 되고. 이기심과 이타심 중 어느 쪽인지가 의문일 뿐…….
이런 의문도, 잠시 바라본 커플 앞에서는 녹아내릴 뿐이다. 지금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만 있을 수 없으니까. 개인의 소망이라는 이기심과 타인과 이걸 나누고 싶다는 이타심이 합쳐진……. 그걸 받아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잘은 모르겠다. 당시에는 연애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굳이 따지면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취미가 뭔지를 궁금해하는 정도였다. 그중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래도 지울 수 없는 부러움을 씻고 싶어 두 사람에게 초콜릿을 건넨다. 옆구리는 여전히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