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챙겼다고 생각했음에도 어딘가 허전한 기분을 채울 수는 없었다. 선박 탑승이야 크루즈 앱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국토종주 등록도 앱을 통해 하면 되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으리라. 적어도 국토종주 회원 정보를 갱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놔…….'
처음에는 집에 돌아가서 국토종주 수첩을 챙길까 생각도 했다. 역주행을 하든 횡단보도를 건너든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앱에서 요청을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것도 그랬고. 하지만 지금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도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신도림까지 가는 길만 해도 신호등이 많은 것도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배를 못 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렇게 다가왔는지도 모르리라. 마침(?) 차들도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든 되리라. 내가 인간이 맞다면 분명 길은 존재할 것이요, 인간이 아니라 할지라도 항상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었음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아……."
길은 평소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따진다면 막역지우가 없다는 사실 정도랄까. 같은 시간이나 같은 차가 없다는 사실은 원 플러스 투고.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투의 존재도 그렇지만, 막역지우의 유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번 여행은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지닌 가능성과 그 가치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있다면 투닥대는 묘미야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순간만큼은 혼자 있게 하는 게 더 나은 편이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진지해지니까. 지금은 주어진 선택지가 더 중요한 문제겠지만.
이런 생각에 집중한 덕분일까? 생각보다 신호에 그렇게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신도림에 도착한 것 같은데……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신도림에서 한 번 전철을 탔다지만 그것도 우리집 근방에 매우 흔한 2호선행 열차였다. 거기다 목적지는 인천. 인천이야 몇 번 갔다지만 대부분 자전거로 갔으며 명절 때 외삼촌 댁에 일을 도우러 갈 때도 인천 1호선이나 공항철도만 이용했다. 지하철 앱이 정확하다지만 그것도 가끔은 부정확할 때가 있으니……
다행히 완전히 길치는 아니었는지 무사히 전철에는 탑승을 했다. 적어도 그 전철이 어떤 전철인지는 몰랐지만 목적지인 인천항으로 가는 전철이었음은 확실했다. 뒤늦게 그 전철이 급행열차고 생각했던 곳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전철을 탄 이상 상관없었다. 항구로 가는 열차만 타면 나머지 길은 여러 차례 보았기에 익숙했으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한 정거장 차이이므로 전철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를 여러 번 보고 기억하면 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가?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잡고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라는 내용의 광고가 버젓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조금은 쉬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하는 중이다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들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하기 위해서, 설령 그 점검이나 확인의 결과가 실전에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물론 책을 보는 행위 자체가 나쁘다던가 하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그것을 뒤로 한 채 책을 보는 게 과연 최선의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목적지가 어디인지까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도 있는 법이 아닐까. 지금의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점검의 배신이 내게 남기고 간 무엇이었다. 그 순간 자체를 날렸을지라도 분명 길은 있다는 것, 그리고 점검에서 배신을 당했을지라도 최악의 행위를 생각하지 않으면 차선책은 떠올릴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인천항으로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