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잘 자고 있습니다

by chldew

물만큼 복합적인 기분을 주는 사물은 드물었다. 익사할 뻔했음에도 여전히 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결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넘실거리다 어둠을 이불 삼아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푸르렀다. 故 최인훈 소설가의 대표작 『광장』의 도입부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는……. 그래서 바다의 코골이는 철썩이다 출렁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물과 고물의 승객들 몇몇의 귀는 덕분에 조금 촉촉해졌으리라.


그럼에도 바다의 깊이는 미지로 남아야만 했다. 바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도. 가끔 바다의 꿈을 보려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끝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바다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故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에서도 그랬으리라. 청무밭이라 생각하고 갔다가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간……. 누군가는 이런 순간들이 호접지몽이나 일장춘몽처럼 지나갈 무엇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은 봄과 나비에만 국한되지 않으니까.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이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갈매기들도 바다 한가운데의 바람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 뱃소리만이 어느 해협의 한가운데를 채웠다. 그 사이를 바닷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찾은 선내도 다를 것은 없었다. 주전부리가 고물을 진작에 점령했기 때문인지 1층은 식당가에 가까울수록 북적였다. 근처의 편의점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주류 코너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배가 그렇게 고프지도 않았다.


몇 번 목을 푼 뒤에 향한 곳은 선실이었다. 볼수록 게스트하우스에 왔다는 느낌이 든 건 예약한 선실이 10인실이기 때문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오토바이 헬멧 또한 보였다. 위험은 하겠지만 그쪽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자전거보다는 빠르고 승용차보다는 느리니까. 직접 제주도의 바람을 느끼기도 좋고. 그래도 지금은 숙소의 느낌을 즐기고 싶었다.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서서히 다가왔으니까. 크루즈를 타니 당연한 걸까?


침대에서 데이터를 켜도 인터넷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었음을 게임은 가르쳐주었다. 바다 한복판을 지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푸르고 육중한 비늘들을 뒤채다 청하는, 바다의 잠이 깨서는 안 되기에 더더욱. 2년 뒤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낸 프로젝트 네이틱은 그래서 신기한 프로젝트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데이터센터를 바다에 넣고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인데 데이터센터 자체의 열을 바다의 냉기로 식히고 소음공해도 해결할 수 있다나. 바다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잠을 청하기 힘들겠지만…….


하지만 이 쪽에서는 데이터센터가 될 기반 자체가 없었다. 가방이 책이나 필기구를 담을 정도로 크지 않아 필요한 물품들만 간단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설령 책이나 필기구를 가져갔어도 제주도의 날씨가 이방품들을 받아줄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이때부터 크게 다가온 건 그래서였을까. 핸드폰 화면 속 숫자는 19:30. 기지개를 피고 다시 한번 식당을 둘러보았다. 크루스만의 낭만을 떠올린 듯 고물은 여전히 북적였지만 식당가는 한산했다.


마침 테이블도 몇 군데 비었기에 저녁밥으로 8000원을 지불했다. 메인반찬은 다 떨어졌지만 여전히 맛은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일까? 가끔 선원분이 메인을 리필했으나 더 받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배는 불렀으니까. 다시 배가 고파지면 편의점 맥주와 안주를 찾으면 되기도 하고.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푸드코트도 괜찮으리라. 배 뒤편의 느낌은 포기해야겠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식의 구경도 구경이니까.


바닷가에는 항상 모기가 많았지만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실내 어딘가에 들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기 입장에서는 故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에 나왔던 나비와 비슷한,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으리라. 나비와 같은 착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어쩌면 바닷가에 가끔씩 보이는 물웅덩이와 비슷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구 바깥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웅덩이니까. 다르게 보면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원래는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마다 운동을 했다. 산책에서 시작한 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강도로 향했다. 그래야 머릿속의 생각들을 눌러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는 결국에 그 생각들이 너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아직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게 믿었던 걸까? 아니면 냉수마찰이 주는 그 느낌이 떠올라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진실일지도 모르고. 노라조의 <샤워>라는 노래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머리가 복잡할 때는 머리를 감으라고.


그래서 샤워를 청했다. 운동을 얼마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 날은 냉수보다 온수가 끌렸다. 평소에도 온수로 씻었기에 익숙한 느낌일 줄 알았던 선상에서의 샤워는 어딘가 묘했다. 샤워용 물은 어디서 가져오는지부터 시작해서 몸을 스치고 내려가는 물은 어디로 가는지 등등……. 평소라면 떠올리지 않았을 의문들이었다. 보통의 숙박업소들은 구조 자체가 그렇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수도를 따라 내려가다 정화 시설을 거쳐 바다로 나아가는 식으로.


선박 또한 간단하게 보면 이런 구조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주차장 주변에 있는 수도관이나 다른 파이프를 보면 더더욱. 그럼에도 배가 있는 장소 자체를 생각하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은 의문이 다시 살아났다. 제 쓰임을 다한 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정화 시설이 자체적으로 있거나 하는 거라면 몰라도. 그 이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물은 어떻게 나오는지 또한 의문이었다. 아쿠아리움과 비슷하게 해수를 길어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에서 시작한 샤워는 의문으로 끝이 났다. 몸을 닦기 전까지는. 수건이 남아있는 의문을 물방울과 함께 가져가면서 상쾌함을 대신 채워주었다. 적어도 이야기를 쓰기 전까지는. 몇 번 몸을 푼 뒤 배 안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으나 이곳의 편의점은 어떨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선박 내의 편의점은 궁금증에 비해 일반적인 편의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24시간 운영이 아니라는 점 정도일까. 기타 페이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과 함께.


에이스 하나와 저칼로리 맥주 한 캔을 구매 후 근처의 테이블에서 한 잔을 기울였다. 바다가 뒤챈다는 비늘이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창 밖을 볼 때마다 가족들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떠나기 전에 재웠던 갈비를 굽고 미리 부쳐둔 전을 다시 데워서 술 몇 잔을 걸치고 있으리라. 그에 비하면 지금 먹고 있는 술과 안주는 새벽녘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새벽녘에 편의점을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찾을 법한 느낌이니까. 유일한 젊은이의 느낌은 과자의 맛이 뉴욕 치즈케이크의 맛이라는 점 정도고.


바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곤히 자고 있었다. 자신이 뒤채는 비늘의 색과 무게도 잊고. 그래서 더더욱 가족 생각이 났던 걸까? 날이 밝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마침 봉지와 캔의 무게도 0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0에 도달할 일은 없으리라. 그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어질 때에야 가능하니까. 인간의 존재를 무가치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리라. 과자봉지나 캔보다 더 복잡하고. 자신이 없어지면 땡인 둘과 달리, 인간은 사라져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잠시 사라졌다, 내일과 함께 살아나고 싶다. 내일의 여정이 제일 피곤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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