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신화가 가지는 상징의 힘

황룡사 9층목탑과 대왕암이 만들어낸 혼문

경주 동해바다 대왕암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는 이 글을 과연 누가 읽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쓰면서도 소통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케데헌 속 여성신화로 특강을 요청해 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그리고 온라인 강연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어느 날 밤 작은 화면에 모인 많은 연구자들은 혼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케데헌> 속 혼문은 원래 있는 말일까. 그렇다면 무슨 의미일까. 구글에서 찾아보면 '케데헌'의 '혼문'은 K팝 그룹이 악령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음악과 감정으로 만들어내는 영적 보호막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혼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나는 케데헌 강연에서 논쟁하던 ‘혼문(魂門)’이라는 단어가 요즘 자꾸 마음에 걸린다. 단순히 영혼의 문이라는 뜻을 넘어, 인간이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세우는 상징적 방파제,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의 글이 생각난다. 추석과제로 케데헌 나의 브런치 글 몇 개를 보고 자신이 느끼는 케데헌 감상을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쓴 황룡사 9층목탑과 혼문을 연결하는 것을 불편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결국 공감하게 되었다는 글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혼문의 정의를 성찰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신화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문’의 상징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선덕여왕의 황룡사 9층목탑과 문무대왕의 대왕암이다. 두 유적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혼문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선덕여왕의 황룡사 9층목탑은 80m에 이르는 상징적 거대한 울림이었다.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흔들릴 때, 선덕여왕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믿음과 마음을 모으는 장치, 즉 정신적 방패를 세웠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탑이 완성되면 사방의 적이 물러간다는 신탁이 믿어졌고, 실제로 그 탑은 경주 어디에서든 보이는 거대한 기준점이 되었다. 나는 이 탑을 볼 때마다, 혼이 흔들리는 시대에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상징의 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깨닫곤 한다.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백성들의 불안과 희망을 끌어안으며 나라의 기운을 하나로 묶어 세운 거대한 혼문이었다.

하지만 혼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황룡사 목탑이 하늘을 향한 문이었다면, 문무대왕의 대왕암은 반대로 바다로 향한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 싶다며 동해의 바위섬에 묻히기를 원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대왕암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의 무덤이 단순한 장례의 공간이 아니라 외해에서 밀려오는 위협을 막아내는 또 하나의 방패, 즉 바다를 향해 열린 혼문처럼 느껴진다. 황룡사의 목탑이 ‘땅 위에 세운 수직적 혼문’이었다면, 대왕암은 ‘바다에 세운 수평적 혼문’이었다. 하나는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는 수직적 상징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나라의 경계를 지키는 수평적 상징이었다.

이 두 ‘문’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이 둘이 결국 하나의 연속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선덕여왕이 하늘과 땅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세운 혼문이 황룡사 목탑이라면, 문무대왕은 바다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다에 바쳤다. 탑의 꼭대기와 대왕암을 때리는 파도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모두 ‘혼란한 시대에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두 군주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케데헌 속 루미가 세운 혼문은 어디쯤 놓여 있을까. 루미의 혼문은 방어의 울타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을 빛으로 바꾸어내며, 타인의 두려움까지 함께 품어내는 문이었다. 그 점에서 루미의 혼문은 황룡사 목탑의 집단적 울림과 대왕암의 헌신적 상징성을 이어받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고 느껴진다. 황룡사 목탑이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냈다면, 루미의 혼문은 서로 다른 존재의 불안과 상처를 하나의 공명으로 묶는다. 문무대왕이 스스로의 육신을 바다에 던져 나라를 지켰다면, 루미는 자기 안의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공동체를 지켜낸다.

결국 혼문은 외부의 적을 막는 방패에서, 마음의 균열을 치유하는 문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변화 속에서 신화가 가진 상징의 힘을 다시 본다. 상징은 시대의 언어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그 힘은 단순한 기원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정서적 기반이 된다. 혼문은 그 증거다. 고대에는 탑과 무덤이었고, 케데헌 속 세계에서는 빛의 장벽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세우는 혼문은 아마도 불안한 시대 속에서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공간일 것이다.

케데헌 강의를 하고 나는 혼문에 대해서 또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지어야 할 혼문은 어떤 것일까.

황룡사 목탑처럼 높을 필요도 없고, 대왕암처럼 거칠 바다를 향해 서 있을 필요도 없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작은 믿음, 타인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사소한 연대, 그리고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해도 아마도 혼문은 계속 세워질 것이고, 세워져야 할 것이다. 신화가 가진 상징의 힘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시대의 욕망에 따라 다시 깨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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