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삼국유사 속 처용

교실에서 만나는 다양한 처용 상상력

처용탈을 가지고 쳇지피티와 만든 처용 이미지이며, 울산 처용 문화제와 합성했다.

삼국유사 속 인물 중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처용에게 특별한 마음이 가곤 했다.

그는 단순히 역신을 쫓아낸 주술적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과 혼란의 순간에 춤과 노래라는 감정의 언어로 세상을 가다듬은 사람이다.
특히 《지도 위 삼국유사》 파일을 다시 읽고 수업 준비를 하면서, 나는 처용을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로 다시 세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확신은 이번 학기 학생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선명해졌다.


학생들에게 처용 설화를 읽게 하면 대부분 역병신이 아내를 범했다는 기괴한 이야기만을 떠올린다. 이는 교과서가 풀이해 놓은 공식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뒤에 있는 더 본질적인 힘 즉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을 강조한다.
처용이 역신과 싸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칼이나 주문이 아니라 노래와 춤, 즉 자신의 몸과 감정을 살아 있는 언어로 만드는 행위였다.
나는 이 지점을 강조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항상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두려움과 함께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나의 질문을 듣고 난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삼국유사의 상징체계를 조금씩 자신의 일상과 연결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비형랑·도깨비·호작도 같은 병과 재앙의 상징들이 한국문화 속에서 어떻게 해학과 유머로 전환되었는지를 탐구한다.
그들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경험하는 불안을 고대적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처용은 단순한 옛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전문가”, “정서 조절의 상징 아이콘”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처용이 있다. 한 학생은 현대의 역병 경험 즉 코로나19와 디지털 바이러스를 연결해 처용 아이콘을 재해석했다. 처용이 기침하는 학생 앞에서 춤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학생은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역신’에게 시달리는 SNS 시대의 사용자들을 처용이 보호하는 만화적 장면을 그렸다.
그들의 창작물 속에서 처용은 전염병의 문을 지키는 존재이자,
감정이 요동치는 디지털 세계에서 자기감정을 춤추듯 조율하는 조력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의 재미난 작품들을 보며, 앞으로 삼국유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은 오래된 지혜를 보존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지혜를 오늘의 언어로 재구성해,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 삶의 서사 속에 고전을 불러오는 순간에 비로소 살아난다. 그 의미에서 처용은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살아 있는 존재였다.


학생들은 특히 처용의 ‘도망치지 않음’에 주목했다.
역신이 아내를 범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분노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 즉 춤과 노래로 맞섰다.
학생들은 이것을 ‘감정 처리 기술’, ‘정서적 회복 탄력성’이라고 표현했다.
AI와 데이터가 인간의 정서를 흔드는 오늘의 세계에서, 처용의 태도는 오히려 더 절실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AI와 삼국유사 프로젝트>에서 나는 학생들이 처용을 다양한 미래적 이미지로 재창조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팀은 메타버스 속에 ‘디지털 처용 아바타’를 만들어,
역병·가짜 뉴스·혐오 발언 같은 현대의 역신을 감지하면 춤으로 주변 이용자의 스트레스를 낮추는 기능을 설계했다.
이 아바타는 사용자의 표정을 분석하고, 밝음·어둠·혼란의 감정을 색채로 시각화한 뒤 처용무의 리듬을 따라 형태를 변화시켰다.
학생들은 이것을 삼국유사와 AI가 만나는 접점, 즉 미래 인문학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오래전 《삼국유사》속 처용이 오늘의 도시 한복판에 다시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다시 춤추고 노래한다.
불안을 조절하고, 질병과 공포의 상징을 낯설게 만들며,
공동체가 다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감정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은 결코 과거의 잔상이 아니라, 오늘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적 주체로서의 처용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처용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징성을 제안해 본다.


첫째, 정서 조절의 아이콘으로 감정의 리듬으로 불안을 다스리는 존재이다.

처용무의 반복적 리듬은 오늘의 명상·ASMR·감정 조절 기능과 닮아 있다.

처용은 AI 시대의 감정적 균형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재해석될 수 있다.


둘째, 역병·질병을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과 싸우는 영적 존재이다.
우리는 전염병, 혐오, 가짜 뉴스, 소셜 미디어 불안을 모두 현대의 역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처용은 이 위협들을 ‘춤으로 전환’하는 상징이 된다.


셋째, 경계인(境界人)으로서의 타자 감수성을 가진 존재이다.
처용은 타인의 잘못과 상처 속에서도 파괴가 아닌 공감과 춤을 선택한다.
이는 다양성과 다문화 감수성을 강조하는 현대 교육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나는 AI와 삼국유사 프로젝트를 통해 확신했다.
처용은 충분히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이 될 수 있으며,
삼국유사 속 오래된 아이콘은 우리들의 손끝에서 미래적 상징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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