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불러들인 용을 생각하며
1. 용은 왜 변화하는가 – 학생들의 여의주 게임에서 시작된 이야기
얼마 전, 나의 한 학기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디지털콘텐츠 창작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주제는 ‘용과 여의주’. 이미 수천 년 동안 반복적으로 변주된 신화적 상징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아주 현대적 방식으로 다시 열어보였다.
학생들이 만든 게임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이무기로 시작한다.
세상의 이해를 얻기 위한 천년의 수련,
스스로 지켜낸 사람들에게서 얻는 감동과 찬사,
그리고 마지막에만 허락되는 빛나는 여의주.
여의주를 손에 넣는 순간, 캐릭터는 비로소 용으로 ‘변신’하는데, 그때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학생들의 작품에서는 내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이 등장했다.
“용이 되는 조건은 힘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받은 감동, 그리고 스스로의 수련이에요”
이번학기 우연히 나는 용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용산 시민 강좌, 빅데이터 시민 강의, 사회적 기업의 한강 살롱, 한국문학관 강의 그리고 학생들의 수상까지.
존재하지도 않는 동물이 내 삶에 너무 많은 시주를 해 준 셈이다.
드라마 《귀궁》에서 이무기는 이루지 못한 존재로서 용을 갈망한다. 천년 수련과 인간의 인정을 통해서만 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하늘의 질서를 지닌 용은 이무기의 결핍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두 존재는 미완성과 완성, 집착과 초월이 교차하며 서로의 운명을 흔드는 신화적 관계로 그려진다.
그간 오래 연구해 온 신화의 문장들이 학생들의 발표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다시 깨어났다.
‘용의 조건은 천년의 수련, 여의주, 사람들의 찬사’라는 고전적 구조가
디지털 세대의 해석 속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재탄생했다는 것.
이 작은 순간이 나에게는 마치 여의주가 반짝이는 장면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2. 왜 용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가
삼국유사를 텍스트마이닝으로 분석하면 ‘용’이라는 단어는 100번 이상 등장한다.
그만큼 용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되어 온 존재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등장 횟수가 아니라,
등장할 때마다 용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초기 신라에서 용은 자연을 다스리는 비의 신,
신라 중기에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룡,
후기로 가면 지방 설화 속 이무기, 마을을 지키는 소박한 수호신이 된다.
그리고 지금, AI 시대의 용은
학생들이 만든 게임 속 캐릭터로,
애니메이션과 메타버스의 비주얼로,
데이터 분석과 이미지 생성 기술 속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얻고 있다.
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용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3. 천년의 수련은 무엇일까 – AI 시대의 자기 수련
학생들이 설정한 ‘천년의 수련’은 단지 시간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갱신의 과정,
오래 축적된 배움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리듬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련의 시간을 이전보다 더 짧게, 더 강렬하게 겪는다.
알고리즘, 데이터, 자동화 기술 속에서
배움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만큼 우리 자신을 단단히 세우는 일은 어려워졌다.
그래서일까?
‘천년의 수련’이라는 고전적 문장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변화가 빠를수록,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이 조건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용이 되는 건, 시간을 견디는 힘이잖아요.”
라고 말하는 학생의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4. 여의주를 얻기 위하여 – 시대가 바라는 한 줄기 빛
여의주는 단순한 보물이 아니다.
삼국유사 속 용을 텍스트로 분석하면 ‘꿈, 비, 재앙, 구원’과 같은 단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여의주는 세상을 바꾸는 능력, 혹은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상징이라는 의미이다.
학생들이 만든 게임에서 여의주는
누군가의 고난을 덜어주거나 선행을 했을 때만 얻을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구조였다.
나는 그 설정에서 현대 사회의 감각을 읽었다.
지식이나 스펙만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연결, 공감, 창의적 선택,
그리고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는 태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아야 하는 여의주일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이 모여야만
우리가 여의주처럼 반짝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5. 사람들의 감동 – 용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건
용의 조건 중 마지막은 꽤 흥미롭다.
천년의 수련도, 여의주의 힘도 갖추었지만
사람들의 감동과 인정이 없다면
용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가장 와닿는다.
이 말은 학생들이 만든 게임에서도 절묘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플레이어가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감사와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용으로 승천하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이 현대적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상징이 된다.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능력,
그리고 공감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힘이다.
학생들이 만든 게임이 상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6. 용은 왜 변화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용은 단 한 번도 과거의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만날 때마다
용은 다시 태어났다.
가뭄의 시대에는 비를 부르는 존재로,
전쟁의 시대에는 나라를 지키는 존재로,
혼란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위로하는 존재로,
AI 시대에는 상상력과 기술이 만나는 자리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존재로.
학생들이 만들어낸 용의 세계는
바로 그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용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천년의 수련’, ‘여의주’, ‘사람들의 감동’이라는
오래된 상징의 질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용을 연구하면서 깨달았다.
우리의 상상력은 여전히 살아 있고,
용은 여전히 우리를 알 수 없는 미래로 이끌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