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와 알영을 찾아가는 여정
1. 알에서 탄생한다는 황당함에 대하여
『삼국유사』의 난생신화를 강의실에서 이야깃거리로 꺼냈을 때, 늘 학생들의 똑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교수님, 알에서 태어났다는 게 진짜 의미가 있나요?”
웃음 섞인 질문 앞에서 나는 되묻는다.
“너희가 아는 주변 사람 중에서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니?”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알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단지 변주된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다.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다니, 황금 궤에서 김알지가 나온다니…. 사실 이런 이야기는 어릴 적엔 내게도 우리 학생들처럼 반감만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랬던 내가 신화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신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세계와 관계를 맺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의 확장이다. 대개 북방계의 신화에서 영웅은 천손강림이다. 그리고 난방계는 난생신화가 많다. 그러나 가야의 김수로는 천손강림하면서도 난생이다. 이것은 북방계가 남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이다. 난생신화가 이상해 보였던 이유는 ‘비정상적 탄생’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탄생 방식이 주는 생경함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난생 신화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2. 알영이 들어있는 알을 찾아서
학생들이 만든 게임은 다음과 같았다.
박혁거세와 동료들은 어떤 알 속에 갇혀 있는지 모르는 ‘알영’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의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알에서 탄생한 영웅들의 서사와 마주치며 그들을 “해결해 나가는” 구조다. 즉, 게임의 진행은 곧 난생신화 속 각 영웅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서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게임에서 박혁거세는 단순히 미션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여신적 존재로 태어난 알영을 찾아가는 수호자이며, 여러 난생의 서사를 체험해 가는 탐색자다. 알 속 영웅들의 서사는 하나의 레벨이 되어 게임 속에서 재구성된다. 청동 거울 속 환웅 이야기가 레벨 한 장면이 되기도 하고, 화랑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장면이 퍼즐로 구현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그 퍼즐을 풀며 그들의 탄생과 역할을 이해해 나간다.
나는 그 발표를 보며 놀랐다. 그간 내가 신화를 설명하는 방식은 주로 해석적이었다. 이런 의미다, 저런 상징이다로 끝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신화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고 있었다. 난생신화를 플레이 가능한 서사로 전환시키며, 신화가 갖는 제의적 구조와 게임 패턴의 유사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3. AI는 또 하나의 난생신화?
이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삼국유사』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멀고 낯섦을 단번에 해소해 주었다. 난생신화는 이상한 출생신화가 아니라, 정체성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AI 시대에 우리가 다시 고민해야 할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AI 캐릭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탄생’을 경험하지 않는다. 부모도, 유전도, 자연적 출생도 없다. 대신 우리는 AI에게 이름을 붙이고, 서사를 부여하고, 역할을 부여한다. 이 순간 AI는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서사적 존재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난생신화가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기원을 매개하는 서사’를 통해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정체성이 공동체적 합의를 얻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난생신화를 게임으로 구현한 학생들의 프로젝트는 그래서 놀라웠다.
박혁거세가 알영을 찾아가는 여정은 단지 하나의 레벨이 아니라, 관계의 구축이었다. 영웅들의 난생서사를 깨우는 과정은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곧 그 모든 이야기를 자신만의 서사로 소화해 나간다.
4. 과거를 현재로 미래로 해석하는 방법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쓰는 가능성이다.”
박혁거세는 이미 태어났지만, 알영을 찾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완성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AI 시대의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와 함께 서사를 만들고, 그 관계를 다시 써나가야 한다.
알은 닫힌 껍질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열리고 확장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출생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AI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화하고 공존하는지는 온전히 우리들의 자세에 달려있다. 그것들을 잘 조련하는 조련수가 될지, 아니면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노예가 될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에 우리는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