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삼국유사』 속 사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사랑일까, 폭력일까

서동의 어머니가 지렁이와 관계해서 서동을 낳다고하는 부여 궁남지의 포룡정


AI 시대에 『삼국유사』 속 사랑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낭만만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동 이야기를 읽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폭력인가. 같은 이야기를 두고 질문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인데, 설화는 전혀 다른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아름다운 사랑담으로 읽혀왔다.

서동은 연못가에서 어머니가 지렁이와 관계해서 태어난 아이이다. 미천한 백제 출신의 서동이 아름다운 신라의 공주 선화를 만나 사랑을 이루고, 결국 백제의 왕이 된다는 이야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서동요’, 궁에서 쫓겨난 공주,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탄생까지. 모든 요소가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정리되어 왔다.

그러나 AI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과 이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면 사정이 무척 달라진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단어는 ‘사랑’이 아니었다. ‘가짜뉴스’, ‘연애 스토커’, ‘집단 조롱’이었다. 서동은 가짜 노래를 나라안에 퍼뜨린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아이들의 입을 타고 온 나라로 확산되고, 그 결과 선화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만다.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는 정보의 폭력에 가깝다. 선화공주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못한 채 서사의 중심에서 바보처럼 침묵한다.

학생들은 다소 신경이 곤두서서 목소리를 높인다

. “이것이 정말 사랑이라면, 왜 그녀는 말할 수 없었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억지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기에 가능한 가장 정직한 독해라고 할 것이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이 불편한 감각을 안고 ‘서동 부여 축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동과 선화의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았다. 대신, 이 설화가 오늘의 공간에서 어떻게 다시 질문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민했다. ‘부여–익산 커플 여행’, ‘연못에서 피어난 사랑, 서동요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은 사랑의 명소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겪는 서사의 균열을 중심으로 여러 장소를 여행 코스로 만들었다.

선화공주가 무왕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미륵사탑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화려한 로맨스의 배경이 아니라, 권력 이동과 침묵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백마강의 노을은 낭만의 풍경이 아니라, 소문이 떠돌던 통로로 설명되었다. 공방 체험에서는 서동요를 더 이상 부르지 않고 다시 썼다. 학생들은 선화의 시점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나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나게 했다.” 그 문장이 어쩐지 진심으로 다가왔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일연은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기록했을까. 왜 굳이 이 설화를 남겼을까. 우리 학생들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데.

나는 그 이유를 ‘사랑’보다 ‘전쟁’에서 찾고 싶다. 『삼국유사』가 편찬된 고려 후기, 이 땅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 속에 있었다.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미담이 아니라, 피 흘리지 않고도 질서가 바뀔 수 있다는 상상이었을지 모른다. 서동과 선화의 이야기는 개인의 사랑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 없이 왕권이 이동하는 서사가 숨어 있다. 당시 신라의 왕은 진평왕이고 백제의 왕은 무왕이었다. 둘 다 40년 넘게 장기 집권을 한 왕들이다. 이 시절 백제와 신라는 가장 많은 전쟁을 했고, 백성들은 수많은 전쟁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민중은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멈추고 싶었던 염원을 꿈꾸었을 것이다.

미륵사탑 아래에서 2009년 발견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봉안기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 하나가 있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재건 과정에서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를 세운 이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 사백비였다. 이 고고학적 발견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설화의 중심을 심각하게 흔들었다. 그렇다면 선화공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 이야기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삼국유사』의 의도가 더 또렷해진다. 『삼국유사』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이 아니다. 일연은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가’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했는가를 기록했다. 선화공주라는 이름은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 전쟁 없는 변화를 꿈꾸던 민중의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진평왕에게 셋째 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AI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진실인가, 누가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침묵했는가. 이런 질문 속에서 서동 이야기를 가짜뉴스와 연애 스토커의 프레임으로 읽어내는 것은 더 이상 억지가 아니다. 그것은 신화를 오늘로 데려오는 가장 성실한 방법이다.

사랑일까, 폭력일까.
『삼국유사』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이 계속되는 한, 신화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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