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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통화정책, 이대로 좋은 걸까?

by 노진호


부동산 대책이 또 발표됐다. 이번에도 주요 수단은 역시 대출 억제다. 자산의 ‘기대’ 수익률을 잡지 못한다면 대출 억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 대출 규제는 일관성이 없어서 오히려 투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부동산의 ‘기대’ 수익률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하위 법령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법률로 세율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 장기적인 교육 개혁도 부동산의 ‘기대’ 수익률과 관계가 깊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지난번(『부동산 대출 규제, 급한 불은 껐지만..』)에 언급한 바 있다. 그러니 그 얘기는 그만두고, 이번에는 대출 규제처럼 부작용이 큰 정책의 근본 원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능력과 시간 부족으로 인해 이번 회는(또는 이번 회도) 글이 어려울 수 있으니 이를 감안하고 읽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

필자가 아는 한 해외에서의 금융정책(finance policy)이란 금산분리처럼 금융 제도(system) 전반에 관해 국회에서 법률로 큰 틀을 정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그리고 통화정책(monetary policy)이란 중앙은행이 기업의 투자 수익률, 또는 대출의 기대 수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정책금리를 조절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출을 옥죄거나 풀기’, 또는 금융회사의 (신용공여 관련) ‘영업규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정책을 금융정책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금융회사의 대출(혹은 신용)을 직접 늘리거나 줄이는 금융위의 금융정책은 정책금리를 조절해서 대출을 조절하려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그 목적이 완전히 같다. 하지만 대출을 직접 조절하는 방식의 금융정책은 예측 불확실성이 높고, 풍선 효과를 야기할 수 있으며, 정치권이나 금융회사에 의한 포획(capture) 즉 관치금융이나 정경유착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으로부터 중립적인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해서 금융회사의 대출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의 효율성이 낮아서 정부(또는 금융위)가 쉽게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아래 중앙은행과 민간 예금은행의 가상 대차대조표를 살펴보자. 금본위제나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오늘날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돈’(혹은 통화)이 만들어지고 중앙은행에 의해 ‘돈’이 조절된다.

첫째, 은행은 자기자본의 일정 범위 내에서 ①대출(예컨대 600)을 통해 ②요구불예금(예컨대 600->380)을 창조하는데, 요구불예금(‘결제성예금’이라 불러도 무방하다)이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돈’이다. 그런데 은행 입장에서 볼 때 요구불예금은 입출금 변동성이 크다. 따라서 은행들은 금리가 높은 ②저축성예금(예컨대 600->220)의 형태로 일부 예금을 묶어 둔다.

둘째, 중앙은행은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막고 통화정책(금리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예금의 일정 비율(예컨대 10%)을 ③지급준비금의 형태로 보유하도록 법으로 정한다. 은행들은 필요시 지급준비금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은행에 언제든지 팔고 지급준비금을 얻을 수 있는 ④정부채(국채)를 보유한다. 은행은, 지급준비금이 부족하거나 금리가 높아서 대출이 잘 안되거나 경기 불안으로 기업의 대출 부실 위험이 커지면 대출을 줄이고 안전자산인 ④정부채의 비중을 늘린다.

셋째, 은행에 지급준비금(은행 입장에서는 일종의 요구불예금)을 제공하는 중앙은행은 부채(중앙은행권과 지급준비금)와 동일한 금액만큼 믿을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하는데,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정부의 부채(정부채)를 보유한다. 참고로, 과거 금본위제 시절에 중앙은행이 부채의 대응 자산으로 보유한 것은 금이었다. 예컨대 40%의 부분지급준비금 제도인 경우 중앙은행은 금 40만 있으면, 중앙은행권인 지폐와 지급준비금을 모두 합쳐 100까지 발행할 수 있었다. (금 40 / 부분지급준비율 40% = 본원통화 신용창조 100)

마지막으로 넷째, 중앙은행은 경기 상황에 따라 정책 금리(시중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정부채 등을 맡기고 지급준비금을 빌려 올 때 적용되는 금리)를 통해 시중의 ‘돈’을 조절한다. 예컨대, 경기가 하강 국면에 있는 경우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인하한다. 그러면 정부채의 가격은 상승(국채금리 하락)한다. 그러면 시중은행은 가격이 상승한 정부채를 중앙은행에 팔고 지급준비금을 충분히 확보한 후 대출을 늘릴 수 있다. 대출이 늘어나면 돈(요구불예금)도 늘어난다.


이상의 신용창조와 통화(금리)정책의 메커니즘은 대부분의 금융 선진국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아래 [참고]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신용창조와 통화정책 구조는 선진국과 상당히 다르다.

외국과 다른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면 첫째, 우리나라 중앙은행은 정부채를 거의 보유하지 않으며, 대신 외화 자산을 86% 보유한다. (우리나라보다 외환보유액이 많은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 자산 중 외화의 비율은 2%에 불과하다) 둘째, 정부채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재정지출과 무관한 통안증권이 한국은행 부채의 19%를 차지한다. 셋째, 중앙은행-시중은행 간 소통 수단, 즉 국내 예금은행의 지급준비금과 정부채(통안증권 포함)를 합치면 전체 자산의 11%가 되는데, 이는 미국(31%)과 일본(31%)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국내 은행의 지급준비금 자산의 비중(3%)은 미국(9%), 일본(22%) 등에 비해 매우 낮다. 마지막으로, 국내 예금은행의 부채에서 차지하는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의 비중(11%+48%=59%)도 미국(81%), 일본(74%)보다 낮으며, 그 대신 미국과 일본의 예금은행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장성예금(2%)과 은행채(11%)의 비중이 높다.


요컨대, 한국은행은 정부채(+통안채)와 정책금리를 통해 지급준비금을 제대로 조절하기 어려운 제약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예금은행들의 대출과 예금(‘돈’)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조금 덧붙이면,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지급준비율은 1% 미만이지만, 한국은행의 경우 지급준비율이 2~7%(요구불예금 7%, 기타 예금 2%, 은행채 0%)로 상당히 높다. 따라서 국내 예금은행들은 수익성 낮은 요구불예금을 회피하는 대신, 시장성 예금이나 은행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은행채가 발행될 때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이 자주 반복된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금본위제나 고정환율제도의 경우처럼 금, 또는 외화(기축통화)와 연계된 지급준비금을 신용창조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지급준비금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시중의 돈(예금과 대출)을 조절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방식의 통화정책은 효율성이 너무 낮아서 금융위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대출을 조였다 푸는 직접적인 통제 방식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 금융위의 대출 조이기 정책은 자주 시행될 것이고, 부동산 가격도 일관성 없는 대출 규제 정책에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는 형태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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