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23일 디지털 암호자산에 대한 규제 틀을 만드는 ‘작업반’을 설립하고 국가 차원에서 암호자산 비축의 타당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3월 2일에는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자산을 포함한 '암호자산 전략적 준비금'을 창설한다고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의 게시글에서 발표했다. 트루스소셜은 트럼프가 기존 미디어는 믿을 수 없다면서 자신이 설립한 회사가 운영하는 대안 SNS다.
암호자산의 전략적 비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법 집행을 통해 미국 정부가 범죄 수사 등을 통해 압수한 암호자산을 비축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지는 1월 기준으로 미국 정부가 압수한 비트코인이 약 19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돈으로 약 28조 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간 미국 정부는 압수한 암호자산을 정기적으로 매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범죄에 활용되어 압수한 비트코인 등의 암호자산을 그대로 보유하고, 심지어 추가 매입함으로써 암호자산의 전략적 준비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자산이라고도 불리는 암호자산은 무엇인가? 트럼프는 왜 비트코인 중심의 암호자산을 비축하려고 하는가? 암호자산은 사실 별 게 아니다. 실물자산을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서 디지털로 옮겨 놓은 것일 뿐이다. 비트코인처럼 실물자산과 연계되지 않은 암호자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암호자산은 부동산과 같은 유형자산이나, 저작권 같은 무형의 자산과 연계되어 있다. 이 같은 자산의 소유권을 거래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등기와 같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만,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하면 간단한 조작으로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상대방에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즉, 암호자산은 무형자산을 포함한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디지털 수단으로 저장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이 활용되기 때문에 디지털자산, 혹은 암호자산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 암호자산의 궁극적 가치는 그 내용물이 되는 실물자산(무형자산 포함)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만, 블록체인을 조금 설명하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현대의 등기 시스템이나 통화 시스템은 고객의 자산 보유와 그 변동을 기록하는 대규모 기록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록 장치는 보안 비용이 많이 든다. 금융회사에 기록된 나의 금융자산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문자와 숫자가 결합된 복잡한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하고, 금융회사의 프로그램 장치가 요구하는 각종 인증 절차에 응해야 한다. 즉, 내가 나라는 것을 기계에게 증명해야 한다. 해커가 내 정보를 알아내면 금융회사에 기록된 내 자산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통화 시스템은 중앙집중형 저장 시스템으로서 이중, 삼중의 보안 장치가 필요한 고비용의 기록 장치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블록체인은 분권화된 저비용의 디지털 기록 장치다. 블록체인 기술에 조작이나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화 기술을 결합하면 보안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의 실용적인 가치는 거기까지다. 실물자산과 연계하지 않고 단지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만을 사용해 만든 비트코인은 따라서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다. 단지, 채굴되어 유통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한 교환가치를 가질 뿐이다.
교환가치란 무엇일까? 애덤 스미스가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로 설명한 것처럼 희소성이 있는 자산이 가지게 되는 가치, 즉 많은 사람들이 가지려고 하는 데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신고전학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으로서 희소성이 교환가치를 창출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세상에 희소성이 있는 물건이 한두 개인가? 예컨대, 내가 연습장에 끄적인 그림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소중한 작품이지만 아무도 내가 그린 그림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흐의 해바라기는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린다. 이런 교환가치의 차이는 누가 정하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돈을 가진 불특정 다수의 평균적인 지불용의가 그 교환가치를 정한다. 하지만 어떤 희소한 물건이 얼마만큼의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다.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1억 원까지 오르고 며칠 새 수십, 수백만, 심지어 수천만 원씩 등락할 수 있는 이유다. 이쯤 되면, 트럼프가 암호자산을 비축하려고 하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호수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좇는 투자자들을 상대로 거대한 돈을 벌어왔고, 그를 따르는 일부 투자자들에게도 부를 안겨왔다. 물론 그것은 더 많은 투자자들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달그림자를 좇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왜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을 보유하려 할까? 정확한 이유는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문학자들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면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하지만, 경제학 전공자가 그걸 설명하려 한다면 들을 필요가 없다. 사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가치 없는 금이나 비트코인이 교환가치를 가지는 이유,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이 호수에 비친 달을 좇으려는 이유에 대해 다음 번에 설명(을 시도)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