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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암호자산을 비축하려는 이유 - 교환가치(2)

by 노진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시간 3월 7일 ‘암호자산 비축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뻔뻔하다. 3월 2일 자신이 사적으로 보유한 회사가 운영하는 SNS, 즉 ‘트루스소셜’에 국가 전략적인 차원에서 암호자산을 비축하겠다고 선언한 지 얼마 안 돼 공적인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하긴, 겉으로는 공익을 내세우며 뒤로는 사익을 챙기는 것보다 트럼프처럼 대놓고 사익을 추구하는 게 차라리 더 공공 윤리에 부합하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트럼프의 행정명령 서명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오히려 폭락했다. 이는 백악관 암호자산 책임자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가 “암호자산을 추가로 매입하지는 않을 것이며 단지 몰수로 확보한 암호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보관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투자자들의 실망 때문으로 해석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일부 애널리스트는 전략적 비축 물량을 더 늘리려는 트럼프의 의도적 전략 때문에 비트코인이 일시 급락한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암호자산 책임자인 삭스의 발언은 납세자의 부담으로 위험한 자산을 구매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사실 애초에 암호자산을 비축하겠다는 ‘전략적인’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석유를 비축한다거나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화를 비축하는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처럼 사용가치가 없거나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서 투자 위험이 큰 암호자산들을 전략적 차원에서 비축한다니.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는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는 발상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지거나 최소한 유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제학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제한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첫째, 희소성이다. 희소성이 있다고 다 가치가 높아지는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 있지만, 그래도 지난번에 어느 정도 설명을 했으니 일단 생략한다. (이 글의 뒷부분에서 그 이유가 다시 나온다.)

둘째, 꼬리 위험(Tail Risk)이다. 꼬리 위험이란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실현되면 자산가치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만일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의 장부가 해킹되어 모든 거래 기록이 사라진다면, 전쟁이 일어나서 국채와 통화가 완전히 휴지 조각으로 바뀌고 공공기관이 파괴되어 부동산 등기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남아 있는 비트코인 보유 기록만이 거의 유일한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다.

셋째,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이다.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경제학적인 판단이 그렇다는 것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주식에도 종종 ‘더 큰 바보 이론’이 적용되지만, 비트코인은 제한된 거래량, 제한된 거래 시간 등을 감안할 때 ‘더 큰 바보 이론’을 적용하기가 더 쉽다. 상위 10개 기관이나 개인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전체 2,100만 개 중 17%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은 모든 개인이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방적인 시스템인 반면, 거래 속도가 느리다. 결제에 걸리는 시간, 즉 자산 보유자가 바뀌는 시간이 통상 10분 이상이다. 따라서 상위 비트코인 보유자가 시장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걸려들 수 있는 ‘바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설에는 중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기술 진보가 계속되는 한 분배까지는 몰라도 총체적인 경제는 성장할 것이고, 경제가 성장하는 한 평균적인 개인의 구매력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돈 욕심과 돈 걱정은 끝이 없기 마련이므로 돈도 많고 걱정도 많은 ‘더 큰 바보’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공급이 제한된 것으로서 투자자의 레이더에 들어온 것들은 점점 더 희소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 달그림자 같은 비트코인의 말도 안 되게 높은 가격-교환가치-은 바로 이런 개인 차원의 합리적 기대로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는 이런 생각이, 국가적으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비트코인 가격과 경제 성장 사이에는 선순환 관계가 매우 약하다. 주식의 경우 주가가 상승하면, 기업은 증자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함으로써 신규 투자를 할 수 있다. 신규 투자는 대체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총생산(GDP)과 소득 규모를 늘리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경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극소수의 소득효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은 바보일까? 혹은 트럼프 자신이 투자한 가상자산을 띄우기 위해 비트코인을 발판으로 사기를 치는 것일까? 둘 다 가능한 얘기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다.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는 비트코인을 구태여 전략자산으로 보유하겠다는 그의 구상이 대략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는 다음 차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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