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 신문을 보다가 국민의 힘 홍준표 대선 예비 후보의 공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상화폐로 불리는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해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를 없애겠다는 것과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를 없애겠다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놀란 이유는 홍준표 캠프의 경제 책사가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병태 교수는 명실공히 보수 우파의 저명한 스타 경제학자 아닌가? 그가 생각하는 경제관이란 게 이런 것인가?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이 되었다.
그 구체적인 이유를 두 단계로 나누어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 금융의 ‘낙장불입 원칙’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신용카드와 스테이블 코인은 모두 전자결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전자는 외상(credit)이고 후자는 현금(cash)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다. 작은 얘기일 수 있지만, 앞으로 해 나갈 얘기랑 긴밀히 연결되니까 귀찮아도 아래 그림을 통해 한 번 살펴보면 좋겠다. 어느 신용카드 소지자가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고(①) 신용카드로 결제(②)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가게는 신용카드사에 카드회원의 결제 내역, 즉 카드회원의 외상거래 정보를 보낸다(③). 정보를 받은 신용카드사는 다음날 가맹점의 거래은행(B) 계좌로 가맹점수수료가 제외된 요구불예금을 입금시킨다(④). 그리고 한 달 후 신용카드사는 소비자의 거래은행(A)에 외상거래 내역을 제시하고(⑤), 고객 계좌로부터 요구불예금을 빼 온다(⑥).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카드사가 회원의 신용을 완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드 회원이 돈을 갚기 전에 파산하더라도, 신용카드사가 가맹점(거래은행 B)에 이미 지급한 요구불예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낙장불입의 원칙이다. 낙장불입이 발생하는 신용카드 사용액은 그렇지 않은 체크카드나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 등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 신용카드 거래 구조 >
두 번째, 은행 대출에 의한 낙장불입의 위험성은 신용카드 외상 결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 때문이다. 아래 그림처럼 어느 가계가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①) 은행(A)에 주택담보대출을 신청(②)했다고 가정하자. 대출 심사가 통과되고 대출이 완료(③)되면 은행(A)과 가계는 완전히 정반대 포지션이 만들어진다. 즉, 은행의 자산은 가계의 부채가 되고, 은행의 부채는 가계의 자산이 된다. 실제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고, 은행의 장부와 가계의 은행 계정에 각각 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반대로 기록될 뿐이다. 이렇게 기록된 은행의 부채이자 가계의 자산인 은행 요구불예금이 바로 돈이고, 이 돈이라는 기록이 은행의 전산망(network)을 통한 가계의 계좌이체나 체크카드 사용으로 인해 다양한 경제활동에 활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가계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주택 매도자에게 자신의 요구불예금을 이체(④, ⑤)한 이후 발생할 수 있다. 낙장불입의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만일, 주택 매수자인 가계가 주택 매도자의 거래은행(B)에 매매대금을 이체(⑤)한 직후 다른 채무를 갚지 못해 파산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주택 매도자의 거래은행(B) 계좌에 입금된 요구불예금은 회수되지 못하며, 금융권 내에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예금주를 바꿔 가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물론, 돈을 떼이게 된 은행 A는 담보가 된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주택은 시장에서 쉽게 처분되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 거래 구조 >
은행 위기는 은행의 자산이 부채보다 작을 때 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예금주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채무자인 은행이 즉각 응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주택 가격이 주택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빠르게 반영하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주택은 신속하게 공급되기도 어렵고, 신속하게 팔리기도 어렵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주택 가격의 급등락 위험은 높아진다. 무엇보다 주택이라는 자산은 낙장불입의 원칙이 존재하는 은행 대출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금이나 비트코인 등의 자산은 이미 존재하던 예금과 맞교환되는 방식으로 거래되지만, 주택 자산은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예금을 만들어 내고 장기간 존속시킬 수 있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위의 밑줄 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이미 존재하는 예금을 가지고 대출을 만들어 내는 중개기관이라기보다는 대출을 통해 돈(예금)을 탄생시키는 곳이라는 점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