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비생물과의 연계
"물질 세계는 단순한 인간 행동의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력 속에서 사건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 사물들, 존재들은 단순한 수동적인 물질이 아니라 각자의 삶, 권력, 힘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제인 베넷의 『vibrant materiality_활동적 물질성』 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아동기에 저마다 특별히 애정하는 물건이 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장난감이나, 베개일 수도 있고 사소한 일상용품일 수도 있다. 애착 쿠션이나 인형을 안고 있어야 잠자리에 드는 아이도 있고, 좋아하는 물건의 감촉을 느끼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다. 페티시즘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러한 심리는 특정한 사물에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주는 특별한 감정, 혹은 상징이 부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 유아동기에는 비인간존재들을 의인화하기도 하고 무생물 대상을 생명이 있는 존재로 간주하기도 한다. 보석이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인형은 물론 이후에 틈 나는 대로 모은 많은 인형들을 마치 한식구인 것처럼 대했다. 무슨 놀이를 하든 일단 모든 인형들을 둥그렇게 모아 앉혀 놓고 시작했다. 아빠와 같이 보드게임을 할때도 인형, 혹은 인형들의 대표를 상정하고, 세 명 이상이 참가하는 형식을 사용했다. 어떤 날에는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인형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움직이는데, 단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거라고 굳게 믿으며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외동이 느끼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 선택한 방법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보석이의 비인간 대상에 대한 의인화는 인형에 한정되지 않았다. 작아서 못입게 된 옷가지, 낡아서 못쓰게 된 가전제품, 문구소품 등 집 안에 들어온 모든 사물들에게로 확장되어 갔다. 그러니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일에는 고집을 피우며 반대했다. 물건을 사는 것은 관여하지 않지만 일단 물건을 버리면 안된다는 거였다. 사물에 생명이 있다는 애니미즘적 관점에서 보면 물건을 버리는 일은 해서는 안될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보석이를 설득해서 못쓰는 물건을 버릴 수 있게 할까 고민했다.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보석이가 자신이 아끼던 물건들과 잘 이별할 수 있게 할까의 고민이었다. 물건은 사람과는 달리 생명이 없고,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으로는 보석이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보석이의 시선에 최대한 같이 맞춰주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같은 시각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언어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고장났다’를 ‘아프다’로,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를 ‘사망했다’ 같은 말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은 곱게 싸서 아는 동생에게 이사 보낸다고 했고, 병에 걸려 아픈 물건은 고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살아날 수 없어서 보내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어리긴 해도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판단할 줄 아는 나이이기도 한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되고 우스꽝스러운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보석이에게 주고 싶은 의미는 따로 있었다. 일부러 사용하는 그런 표현들 속에서 엄마가 자신에게 공감해 주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겉으로 아무리 고집을 피우고 주장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자신이 애정하던 물건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텐데, 굳이 앞서서 그런 마음에 손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해해준 보석이는 한 가지 조건을 붙이면서 물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데 동의했다. 그것은 헤어져야 하는 물건들과 함께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마음을 내어준 물건들과 이별하는 법을 스스로 찾아낸 보석이에게 고마워하며 기꺼이 하나 하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아동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애니미즘적 성향을 성장 과정중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자, 아동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초기의 시도로 보았다. 이후의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현실자각을 하며 이러한 심리가 점차 사라지고 이성적으로 세계를 볼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동기에 나타나는 애니미즘적 시각을 단순히 비이성적이고 미성숙한 인식의 단계라고 정의하는 것은 일면적이고 부분적인 이론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오브제(object)는 시간, 기억, 감정의 집약체로, 물건은 단순한 기능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각인된 존재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그 사람이 걸어온 과거의 길과, 그 길을 함께 한 주변부와, 앞으로 그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질 미래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존재인 것처럼, 하나의 물건에도 그 물건과 함께 상호작용한 많은 역사와 정동들이 얽혀 있다. 신유물론 등의 현대철학에서는 이전까지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들이 각각의 능동성을 가지고 있고, 물질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사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 참여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울러 물질의 생기를 무시해 온 결과로 빚어진 생태적, 정치적 위기를 지적하기도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는 물건과 쉽게 인연을 맺고 쉽게 끊어버리게 만들면서 그에 대한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구조이다. 가볍게 사고, 마구 쓰고, 편하게 버리는 과정에 대해 크게 마음을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물질과 동물 등 비인간 존재에 대한 예의는 자연스럽게 인간에게까지 확장된다.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에게 가상의 독자성, 우위성을 부여하고, 관련된 모든 유무형의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을 경시하게 만든다. 보석이가 아동기에 겪은 애니미즘적 심리의 발달과정은 물건 뿐 아니라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일깨워주었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부 전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했고, 나와 보석이에게 있어 그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범주의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있어 관여되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