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공감으로 이어지는 정동의 공명
“느낌, 기분, 감정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사이의 이음새를 이루는 오묘한 강도, 속도, 온도, 밀도의 변화과정은 그 요철과 주름, 굴곡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내면서 이행한다. 그것이 바로 정동이다.” - 신승철 『정동의 재발견』 中에서 -
아이는 끊임없이 주변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려 한다. 정서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상을 포함한 주변부를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자신의 행동방식을 배운다. 그러다가 때로 자신 안에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언어화되지 않은 느낌이므로 감정이라기보다 정동에 가까우며, 그와 같은 흐름은 신체 반응과 함께 나타난다. 불편함과 두려움, 기쁨 같이 명명된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므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정동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유아기에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은 울음이다. 눈물 없는 울음이므로 슬픈 감정의 표현은 아니다. 배고파도 울고, 불편해도 울고, 싫어도 울고, 아파도 운다. 울음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아이의 다양한 정동을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울음의 온갖 원인 중 가장 근접한 것을 찾아 해결해 주면, 아이는 자신의 정동이 수용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가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동에 대한 명명법을 학습하게 되고 비로소 감정으로 표현한다.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명명하는 감정을 분류하고 인식하면서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정동/감정을 표현하기란 애매한 부분이 많다. 느낌은 한 가지가 뚜렷하게 주도하며 부상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것들이 혼재되어 있고 양가감정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것들이 공존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의 감정을 항상 반대로 말하는 아버지의 표현법을 이해하느라 수십 년이 넘게 걸렸고, 또 자신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고 억압하거나 왜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마도 그들은 성장 과정 중에 자신의 정동과 감정을 충분히 인정받고 수용받지 못했을 것이며, 어쩌다 표현한 감정들도 억압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뭐 그런 일 가지고 그래! 네가 지금 그런 감정을 표현할 때야? 네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니?’ 등등... 자유롭게 흐르고 적절하게 표현되어야 할 정동과 감정은 갖가지 장벽에 가로막혀 길을 잃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고(방식)는 상처를 덜 받으려는 자기방어기제와 함께 일정한 방향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일 텐데 그중 단연 으뜸은 자신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는 보석이에게 항상 의연하고 모범적이고 흔들림 없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어떤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모습을 애써 가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속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부모로서의 삶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게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부모의 상을 잘 배울 수도 없었고, 보석이가 자식으로서 처음 사는 것처럼 나 또한 이번 생애 부모는 처음인지라 어차피 부딪쳐가며 배워야 하는 면도 있었다. 오히려 그동안 사회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일원으로서, 엄격한 부모의 자식으로서 제한당한 감정을 보석이한테 만큼은 더 많이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있고 그 감정 자체는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다. 나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다른 영향에 의해 왜곡된 감정이거나 아니면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바랐다. 정확히 말하면 보석이가 그렇게 이해하기를 처음부터 마음먹고 의도했다기보다 나의 막연한 의향이 보석이로 인해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석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무렵, 감기처럼 우울증상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전까지 살던 익숙한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만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마루 바닥에 붙어서 지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불쾌하고 괴로운 마음이 자각되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랐다. 그 시절의 생활은 거의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단조로웠고, 보석이를 위한 최소한의 집안 일만 겨우 해내고 있었다. 확실치는 않아도 어떻게든 자식은 건사할 정도였으니 중증은 아니었겠지만 무쓸모한 인간이라는 느낌과 밑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불쾌감, 무력감이 일상생활을 압도해 버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주거지의 변화라는 사건은 그 시기에 촉발된 우울증의 도화선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석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은연중에 복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삶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이고, 이성과 의지의 행로에 있어 방해만 될 뿐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석이의 시절과 교차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존받고 인정받아야 할 소중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전에 평가절하하고 억누르면서 너무 오랜 시간을 지나온 스스로를 발견한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구축해 온 가치관을 변경해서 새로 정립하는 것은 말하자면, 자기가 완전히 해체되어 재조립되는 과정과 같이 아픈 일이었다.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몇 주 동안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에게 눈물로 사죄하고 화해한 후,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후에는 습관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나 말투, 종결 어미 사용방식 같은 의사소통의 디테일을 보석이에게 지적(?) 받으며 조금씩 고쳐 나가려고 노력했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의 말처럼 아이의 감정 표현을 부모가 거부하거나 왜곡하면 아이는 자신을 포기하고 부모가 원하는 감정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패턴은 일종의 부모와 사회에게 인정받으려는 생존 본능처럼 작용해서 본래의 자기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일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되면 공감결핍이나, 우울, 감정 무기력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동조되지 못한 정동과 공감받지 못한 감정의 소유자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대할 수밖에 없다.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고 원인이 타당한 감정만 주로 허용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상행동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어서 대부분 자의나 타의의 억압을 경험한다. 정동을 읽을 수 없는 문화, 감정을 재단하는 문화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했으니 타인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유교문화와 자본주의가 압축적으로 결합된 시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너무 파란만장하여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한 정동과 감정으로 인한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상처받은 영혼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입은 상처를 타인에게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먼저 알아채고 돌봐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가 보석이와의 관계를 통해 알게 되었듯이 주로 타인(외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