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
“비인격적인 상품과는 달리 (가정에서의) 음식은 상징적으로도 그리고 생리학적으로도 소비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최고의 선물이다. 그것은 몸과 정신 모두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데버러 럽턴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_음식, 몸, 자아』 中에서”
아이는 먹는 대로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성장기의 먹거리는 성인기와는 달리 매우 중요하고 그 기능도 차이가 있다. 성장기는 세포 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이므로 음식을 통해 근육, 뼈, 뇌, 장기 등 신체 전반의 세포 수가 늘어나고 크기가 커진다. 이 과정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는 것이 성장기 먹거리의 핵심 역할이다. 반면에 성인기에는 더 이상 세포 수가 늘어나지 않으므로 음식이 전반적인 신체 기능의 유지, 보수와 관련된 역할을 한다.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그의 저서에서 ‘무엇을 먹느냐가 곧 그 사람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굳이 유물론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왔음 직한 말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암묵적이고 본능적인 공감으로 대부분의 엄마 혹은 아빠는 아이들의 먹거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될 수 있으면 영양이 풍부하고 깨끗하며 해가 적은 식재료들을 고르려고 애쓰고, 요리 방법이나 식사 간격 등도 고려하며 아이들의 끼니를 챙긴다. 뭐가 됐든 아무거나 잘 먹으면 그만이라고 하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로운 음식들이 많고, 접근성도 쉬운 환경이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먹기 위해서 산다는 사람도 있듯이 유난히 먹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먹는 즐거움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보석이의 경우가 후자였다. 유치가 자라고 밥을 먹기 시작한 나이부터 한 끼에 꼬박 한 시간씩 하루 세 시간(때로는 그 이상)을 밥을 먹는데 썼다. 저작 활동에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씹는 행위에 소극적이었고, 한 번 입에 넣은 음식을 백번쯤 씹다가,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씹기를 반복했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고, 입맛에 안 맞으면 뱉어버리거나 하지도 않아서 적은 양이라도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밥상에 앉아서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난다. 발육상태가 늘 하위 10~20프로 정도에 달할 정도로 저조해서 보석이와 나는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과제를 해내는 기분으로 식탁에 앉았다. 세 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토피 증상 때문에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해 생협매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했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어렵게 먹이고 치우고 하면 방학 때는 먹는 것과 관련된 일로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했다. 힘들어도 일단 만들어 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먹고 크는 아이들에 비해서는 다소 어려움을 겪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보석이와 나는 먹는 것 앞에서 그저 서로 힘들기만 했다.
아이가 잘 먹지 않는데 엄마가 그 앞에서 입맛이 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나 역시 먹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보석이가 한창 먹으면서 클 시기에 ‘먹는 일’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먹는 것은 늘 중요했다. 먹는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무엇을 먹는가가 중요했고, 보석이가 저작활동을 오래 하면 할수록 그만큼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물론 보석이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법한 식사 시간 중에 엄마의 따분한 설명을 듣는 척하면서 혼자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 표정을 자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보석이는 후에 학교 수행평가에서 ‘초등생들이 자주 먹는 간식에 포함된 식품첨가물’에 관해서 글을 쓰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보다 편의점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을 훨씬 덜 먹기도 했다. 엄마의 밥상머리 설교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의 맛을 실제로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자극에 약한 우리의 미각은 음식의 선택 앞에서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음식은 몸을 구성하기도 하고 마음을 지배할 때도 있다. 음식이 그 사람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eat-는 말은 음식이 사람의 모든 세포와 조직의 재료가 되어 신체 기능을 유지하게 한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식은 뇌기능과 기분, 인지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만성질환, 노화에도 관여한다. 각종 무기질이 신경계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장내 미생물이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어 스트레스반응, 불안, 우울과 같은 정신 활동에 관여하기도 한다. 우리의 장에는 수억 개의 뉴런세포가 존재하며, 섭취된 음식물에 따라 다양한 활동성을 보이는 수 조개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음식이 신체 및 정신과 맺는 생화학적 관련성들이다. ‘음식이 곧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선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음식과 식재료에 관한 지식은 접근이 어려운 영역이 아니라서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얼마나 크게 생각하느냐와 그에 따른 관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음식을 먹는 자신 및 타인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실제로 엄마 혹은 아빠가 자식을 위해 만들어 준 식사가 소문난 맛집이나 미슐랭 레스토랑의 음식들보다 맛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집밥이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모든 감각과 정서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 안에는 자식에게 만들어 줄 음식재료가 가득한 장바구니를 든 엄마의 표정과, 간을 보랴 칼질하랴 바쁘게 이리저리 주방을 넘나드는 엄마의 뒷모습과, 한 숟갈이라도 더 먹기 바라는 마음이 담긴 안타까운 눈빛 같은 것이 불러일으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비록 보석이의 성장기에 식탁에서 함께 나눈 기억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감정만은 보석이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일만 주로 해 온 시절의 한복판 즈음, 친구가 나를 위해 차려준 밥상 앞에서 울컥 눈물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마음을 담아내는 일이고, 그 밥상에 마음이 서려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